관계에 서툰 남녀 이야기
전날 친구들과 즐겁게 논 라우라(세이디 하를라 분)는 암각화를 보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러시아 무르만스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같은 칸에 탄 남자는 꽤나 불량해 보이는 외모에 행동도 거칠어 신경 쓰이지만, 어쩔 수 없이 참고 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밤이 늦자 남자는 취해서 계속 귀찮게 한다. 급기야 왜 여자 혼자 기차를 탔느냐며, 몸 팔러 가는 것이냐며 겁탈하려 든다.
라우라는 도저히 못 참겠어서 다른 칸으로 바꿔줄 수 있는지 승무원에게 묻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다인실에 가봐도 잘 곳이 마땅치 않자, 다시 자기 칸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캠코더로 전날 찍은 영상을 본다.
아침에 일어나 물도 안 나오는 화장실에서 대충 이만 닦고 그냥 상트페테스부르크 역에서 내린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기차에 올라탄다. 지난밤 같은 칸을 쓴 료하(유리 보리소프 분)가 왜 짐을 가지고 내렸느냐며 시비를 걸더니, 무르만스크에는 무슨 일로 가는지 묻는다.
이에 라우라는 암각화를 보러 간다고 답한다. 그랬더니 이번엔 암각화가 뭐냐, 그거 보러 그 멀리 가서는 보고 나면 그 다음엔 뭐하는 거냐며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렇게 기차는 달려 다시 밤이 되자 어느 역에 정차한다. 이에 료하는 반강제로 라우라를 자기 할머니 집에 데리고 가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아침에 허겁지겁 집에서 나와 간신히 기차에 다시 탄다.
같은 핀란드인이 승무원과 의사소통이 안 돼 애를 먹는 걸 본 라우라는 그 남자를 자기 칸으로 데려가고, 료하는 남자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남자가 중간에 먼저 내린 후에야 라우라는 자기 캠코더를 남자가 훔쳐간 것을 알고는 모스크바에서의 추억을 잃어버렸다며 화낸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라우라는 애인이 잡아준 호텔에 가서 체크인을 한 후, 암각화를 보러 가려면 어떻게 가는지 묻자 지금은 갈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택시 기사 역시 겨울엔 갈 수 없다며, 과학자들은 헬기를 타고 가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때 료하가 나타나 어떻게든 라우라가 암각화를 볼 수 있게 해 주려고 백방으로 애쓴다.
영화 <6번 칸>은 제74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으로, 거리를 두려는 여자와 거리를 좁히려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관계에 서툰 남녀를 그린 작품이다.
핀란드 출신의 유학생 라우라는 고고학을 전공하는 까닭에 1만 년의 역사를 간직한 암석화를 보러 먼 길을 떠난다.
둘이 같은 칸을 쓰게 된 료하라는 남자는 건설쪽 일을 하는데, 생긴 건 거칠고, 말하는 것도 무식이 통통튄다.
라우라는 자신과 너무 다른 료하에게 거리를 두려하지만, 상남자처럼 보이는 료하는 어떻게든 라우라와 가까워지기 위해 할머니 집에 데려가기도 하고, 기상(氣象) 때문에 암석화를 보러 갈 상황이 안 되자 어떻게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어쩌면 료하는 나쁜 사람이어서 거친 것이 아니라, 남과 관계 맺는 법을 제대로 모르는 남자인지 모른다.
오히려 같은 핀란드인이라고 호감을 갖고 몇 시간 함께한 남자가 라우라의 캠코더를 훔쳐 도망친다.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90년대 후반이다. 라우라는 지금은 쓰지도 않는 묵직하고, 화질은 안 좋은 핸디캠과 지금 같으면 벽돌 취급받을 워크맨을 가지고 다닌다.
촬영 역시 코닥 35mm 카메라와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예전 조명을 이용해 옛날 감성으로 찍었다.
이에 대해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은 보도자료를 통해, 1990년대 후반엔 스마트폰이 없어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낯선 이에게 물어야 했다며, 서로에게 의존적이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어 배경을 1990년대 후반으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영화 <6번 칸>은 내달 8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