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을에서 갑이된 그녀의 최후는?
패션모델 칼과 야야를 통해 여러 고정된 역할에 대해 비판하는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다른 직종과 달리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패션모델의 세계. 분명 어제 야야가 칼에게 “내일은 내가 살게”라고 했는데, 오늘 또 식사 후 “자기야 잘 먹었어”라고 하자 칼은 돈은 네가 더 잘 버는데, 내가 남자라는 이유로 꼭 매번 밥을 사야 하냐며 볼멘소리다.
남자가 여자에게 밥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야야는 치사하게 무슨 밥값 가지고 투덜대냐며 자기가 내겠다고 하지만, 카드 사용한도가 초과됐고, 현금은 충분치 않아 결국 또 칼에게 얻어 먹는다.
수입은 칼보다 3배를 더 벌면서, 이 정도면 일부러 이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인플루언서이기도 한 야야가 초호화 유람선 무료 체험에 초대받자 두 사람은 한껏 기분을 낸다.
같이 탄 부자 승객 중 한 중년 여성은 직원에게 수영을 권한다. 근무시간이라 안 된다고 하니, 우리 남편이 이 유람선 인수할 거니까 그냥 내가 시키는대로 좀 하라고 압박한다.
야야는 비싼 음식을 사진 찍어 SNS에 올린 후, 손도 안 대고 치운다. 그리고 다른 부자 승객들처럼 직원들에게 제대로 갑질을 하며 한껏 기분을 낸다.
그렇게 승객들이 한껏 즐겁게(?) 보내다가 큰 풍랑을 만나 일부 승객만이 살아남아 무인도에서 깨어난다.
이제부턴 물고기를 직접 잡고, 직접 불을 피우고, 직접 요리를 해야 한다. 혹시 여기서 이런 것 할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니, 누구도 손을 안 든다.
유일하게 이런 걸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유람선 화장실 담당 필리핀 이주여성 애비게일이다.
이에 애비게일은 함께 표류한 사람들에게 자기를 캡틴으로 모시지 않으면, 먹을 걸 주지 않겠다며 그들에게 충성을 강요한다.
더러워도 굶어죽을 수는 없으니 부자들이, 유람선 안에서 하대하던 애비게일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혹시 밤에 짐승이라도 나타날까 싶어 불침번을 정한 후, 나머지는 구명정 안에서 자게 해 주자 다들 억대에 달하는 고가의 시계를 애비게일에게 주면서 제발 구명정에서 자게 해 달라고 사정한다.
평소 손님들에게 갑질당하던 애비게일은 이제 갑의 위치가 되어 한껏 기분을 낸다.
그러다 생각해 보니 이거 뭐 구명정 안에서 재워주고, 물고기 조금 더 주는 것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원하는 남자를 골라서 잠자리도 할 수 있겠다 싶다.
이에 그녀는 자기보다 한참 어리고, 잘 생긴, 모델 칼에게 동침을 요구한다.
여자친구 야야가 시뻘겋게 눈뜨고 쳐다보지만, 그렇다고 뭐 어쩔 건가. 그럼 남자친구 안 뺏기고 둘이 굶어 죽는 것밖에 더 있겠는가.
칼은 엄마뻘은 족히 되어 보이는 에비개일과 하루, 이틀, 사흘 매일 동침한다. 그러다 보니 최고 권력자의 편애를 받는 게 나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이를 즐긴다.
이렇듯 영화는 계속해서 고정된 역할을 비튼다. 꼭 남자가 여자에게 밥을 사야 하고, 필리핀 이주여성은 하대해도 되는 하찮은 (일이나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한다.
그런 관점으로 영화를 바라보면 꽤 수작이다. 하지만, 앞부분이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다.
특히 풍랑을 만나 배 안에 난리가 난 모습을 너무 오랫동안 보여줘 오히려 눈살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이다. 애비게일과 야야가 이 섬의 비밀을 발견한 후 끝나는데, 이로 인해 애비게일의 권력에 위협을 맞는다.
승객들에게 무시 받다가, 무인도에서 유일한 생존기술 보유자여서 최고권력자가 된 그녀가 자기의 자리를 위협받을 상황에 놓이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 쥔 권력을 빼앗기가 싫어한다. 설령 그것이 우연히 잡은 것일지라도 말이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오는 17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