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에 대한 풍자
별장으로 가던 길에 갑자기 차가 고장 나자 펠릭스(렝스턴 위벨 분)는 12Km를 걸어갈 수는 없다며, 지름길인 산을 가로질러 가자고 말한다.
문제는 곧 어두워질 거고, 길을 잃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이에 펠릭스가 정탐을 떠나고, 그 사이 동물 울음소리와 헬기 소리 등이 들려온다.
다시 돌아온 펠릭스는 15분만 가면 된다며, 레온(토마스 슈베르트 분)을 안내한다.
별장에 오니, 우리 말고 또 누군가 있는 모양이다. 이에 펠릭스가 엄마에게 전화해 보니, 엄마 직장동료의 조카인 나디아(파울라 베어 분)가 이미 와 있단다.
차기작 집필을 위해 조용한 곳이 필요했던 레온은 어쩔 수 없이 펠릭스와 작은 방을 쓰고, 두 사람이 한 집에 있는 걸 모르는지 나디아는 밤새 신음소리를 낸다.
이후로도 세 사람의 동거가 이어지고, 너무 시끄러워서 밖에서 자는 레온에게 나디아는 밖에서 자니 좋겠다는 소리나 해댄다.
레온은 이곳에서 책 집필을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주위 사람들과 현상에 무관심하다.
그러다 마을에 큰불이 나 펠릭스가 죽자 그제야 불이 난 걸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책을 완성한다.
현존하는 독일의 거장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어파이어>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산불이 난 것도 인지 못 하는 예술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독일어 원제는 Roter Himmel로 이를 영어로 번역하면 The Red Sky(붉은 하늘)이지만, 발음소리가 마음에 들어 영어 제목을 afire로 지었다는 게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설명.
극 중 작가인 레온은 차기작 집필을 위해 까탈스럽게 굴지만 딱히 뚜렷한 성과는 없다. 반면, 나디아는 여름 한철 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며 돈을 번다.
그런데 사실 나디아는 문학자이다. 노점에서 아이스크림이나 파는 그냥 평범한 여성인 줄 알았지만, 레온보다 문학에 더 전문가이다.
영화는 이를 통해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잘난 맛에 사는 예술가를 꼬집는다.
특히 과거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주체적이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펠릭스도, 차기작 집필을 하는 레온도 나쁘게 말하면 놀고먹지만, 나디아는 그렇지 않다.
보통의 영화나 드라마에선 여성이 남성보다 능력이 없어서 남성에게 빌붙어 신분 상승을 하거나, 원치 않는 결혼을 하지만, 이 작품에선 나디아보다 능력이 없는 두 남자가 밤새 옆방에서 나디아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소리를 들으며 무력감을 느낀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에 올해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다만, 리뷰 기사를 통해 이런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보지 않으면, 영화가 말하려는 바가 뭔지 잘 알 수 없어 지루할 수 있다.
영화 <어파이어>는 오는 13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