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
요즘 한국영화계는 소시민의 활약을 다룬 영화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하순, ‘소시민’이라는 기간제 교사가 검사인 아빠를 믿고 학교폭력을 일삼던 학생을 응징하는 <용감한 시민>을 선보인데 이어, 이달 하순에는 세탁소에 다니는 한 중년여성이 직접 중국까지 가서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는 <시민덕희>를 선보인다.
두 영화 모두 제목에 ‘시민’이 들어갈 만큼,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시민의 활약을 담고 있다.
지난 11일 기자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시민덕희>는 2016년 경기도 화성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김성자 씨가 직접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은 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다.
주인공 덕희(라미란 분)는 운영하던 세탁소가 화재로 피해를 입었으나 보험 처리가 안 돼 막막해서 대출을 알아보지만, 대출도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거래하는 은행의 손진영 대리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는다.
새로 나온 대출상품이 있는데 신용등급을 올리는 전산작업이 필요하다는 둥, 선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둥 이런저런 명목으로 8차례에 걸쳐 무려 3,2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요구한다.
처음 신청한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대출받게 해준다는 말에 덕희는 손 대리에게 돈을 건넨다.
하지만, 갑자기 연락이 두절 되자 직접 은행으로 찾아간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문자로 손 대리의 사원증을 받았을 때는 남자였는데, 여자다.
그제서야 덕희는 사기 당한 걸 알고 경찰서에 찾아간다. 박 형사(박병은 분)는 처음엔 관심잇는 척 하더니, 100억 원대의 사기범죄가 접수되자 덕희 건은 뒷전이다.
박 형사로부터 사건이 종결됐다는 연락을 받은 다음 날, 손진영 대리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다.
이 쳐 죽일 놈을 어찌해야 하나 싶은데, 한다는 말이 자기도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며 자기 좀 구해달란다.
박 형사에게 얘기하니 무슨 사건종결 하자마자 제보전화가 걸려오냐며, 손 대리가 있는 곳의 정확한 주소를 알아오라고 한다.
손 대리로부터 칭다오에 있는 춘화루라는 식당 옆 3층 건물이라는 얘기를 들은 덕희가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검색해 보니, 칭다오에 춘화루라는 식당이 무려 72곳이나 된다.
이에 덕희는 박 형사에게 의지할 수 없어 직접 손 대리가 감금되어 있다는 건물을 찾기 위해 동료이자 조선족인 봉림(염혜란 분)과 ‘대포 카메라’로 중무장한 채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숙자(장윤주 분)와 함께 칭다오로 향한다.
그곳에서 봉림의 동생이자 택시기사인 애림(안은진 분)을 만나 칭다오에 있는 춘화루라는 식당은 죄다 찾아다니면서 전화를 걸어 온 손진영 대리가 있는 건물이 어딜까 추측해 보지만 쉽지 않다.
그러나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했던가? 드디어 통화했던 손 대리를 찾아낸다.
이상의 내용만 봐도 영화가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라미란을 필두로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의 염혜란, 드라마 <연인>의 안은진, 영화 <베타랑>의 장윤주, 드라마 <마에스트라>의 이무생, 영화 <극한직업>의 공명과 영화 <더 문>의 박병은까지 믿고 봐도 좋은 배우군단이 극에 재미를 더한다.
특히 그동안 수려한 슈트핏으로 ‘이무생로랑’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무생이 이번엔 정체를 숨긴 총책 역을 맡아 그동안과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이에 대해 이무생은 기자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중에 총책이 잡힐 때 통쾌함이 있으려면 총책이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감독과 상의해 관련 영상을 찾아봤다며, 너무 세기만 한 총책이 아닌 분에 못 이기는 총책을 연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또 박병은은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형사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 건 아니라며, 지인 중에 형사가 있는데 실제로 만나보면 업무량이 많아서 스트레스가 상당한 걸 지쳐봤기에 (영화에서 흔히 보는 형사의 모습이 아닌) ‘전형적이지 않은 형사’로 가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의 백미는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경찰도 잡기 힘들다는 보이스피싱 총책을 소시민이 잡았다는 점이, 역시 우리 사회는 시민의 힘으로 지탱하는구나 하는 걸 깨닫게 한다는 점이다.
물론 정치인도 공무원도 중요하다. 누군가는 제도와 법을 만들고, 누군가를 그걸 집행해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시민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필요한 일이다.
만약 국민 100%가 공무원과 정치인만 산다면, 그들의 역할 자체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고, 시민의 힘이 크다. 프랑스에선 18세기 시민혁명으로 세상을 바꿨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박 형사도 못 잡는 보이스피싱 총책을 ‘시민’ 덕희가 잡았기에, 이 영화의 제목 역시 <시민덕희>로 정한 게 아닐까?
영화 <시민덕희>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