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참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
돌아가신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폴란드에 같이 가기로 한 벤지(키에란 컬킨 분)와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 분).
데이비드는 공항에 가는 동안 몇 번이고 차가 막힌다, 뚫렸다, 거의 다 왔다 전화한다.
반면, 벤지는 진작부터 공항에 와서 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데이비드에게 진짜 좋은 대마를 구했다며 호돌갑 떤다.
그 바람에 공항 검색대에서 데이비드가 긴장하지만, 벤지는 보안요원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여유로운 모습이다.
폴란드에 도착해 호텔에 체크인 하니, 두 사람 앞으로 도착한 소포를 건네준다. 바로 대마다.
방에 짐을 풀고, 로비에 내려와 사전에 신청한 역사 투어 참가자끼리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들은 각기 본인이, 죽은 가족이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다크투어(어두운 역사를 지닌 장소를 둘러보는 것)가 시작된다.
벤지는 뭐가 이리 신나는지 참가자들에게 물도 사주고, 먼저 말도 걸고 아주 들떴다.
그런 벤지를 보면서 동갑내기 사촌 데이비드는 적응이 안 된다.
방에 돌아와 벤지가 사교성이 부족한 네가 나를 위해 같이 여행 와줘서 고맙다며, 피곤하니 대마나 피우자고 한다.
방 창문이 안 열려 우여곡절 끝에 옥상에 올라가 대마를 피우며 옛날 일을 이야기한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어제 그 팀과 함께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벤지는 유대인인 우리가 폴란드에서 1등석에 앉아서 가는 게 맞느냐며, 과거 우리 조상은 꼬리칸에 욱여 탔을 것이라고 말해 다들 불편하게 만든다.
결국 벤지 때문에 데이비드까지 일반석에 앉아서 가다가, 데이비드가 깜빡 조는 바람에 내릴 역을 지나친다.
당황한 데이비드에게 벤지는 반대방향으로 가서, 기차를 무임승차하면 된다고 말한다. 참 기가 막힌다.
기차 안에서 생쇼를 하면서 검표를 피한 둘은 원래 내리려던 역에 온다.
그렇게 다시 다크투어가 시작된다. 내레이션과 함께 유대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여러 건물을 보여준다.
벤지는 실존했던 사람들 묘지에서 계속 여러 통계나 읊어 대는 게 불편하다고 가이드에게 항의한다. 바로 ‘공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영화 <리얼 페인>은 아름다운 폴란드 풍경 속에 역사적 비극이 남긴 고통을 담아내기 위해 조명과 촬영기법, 음악까지 제작진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사회적 참사를 겪은 이들을 어떻게 기려야 하는지, 그리고 남은 이들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할 기회를 준다.
꼭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 붕괴 같은 오래 전 일이 아니어도,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는 이태원 압사사고와 제주항공 추락사고를 겪었다.
누구는 가족을 잃었고, 누구는 친구를 잃었다.
꼭 지인을 잃지 않았어도 뉴스를 통해 참사 소식을 접하면서, 만약 내가 핼러윈 때 이태원에 갔었더라면, 만약 우리 부모님이 제주항공 여객기를 타고 효도여행 다녀왔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다크투어랍시고 가이드가 “지금 이곳에서 몇 명이 압사당했고, 당시 경찰과 소방관 몇 명이 동원돼서 사고 수습을 할 정도로 큰 사고였다”고 말하는 게 맞을까?
어떨 땐 자세한 설명 대신 “이곳에서 희생된 분들을 위해 잠시 기도하자”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사회적 참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알려주는 영화 <리얼 페인>은 오는 15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