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 대표도, 기자도, 배우도 이해 못한 영화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의 이론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그들보다 더 과학이 발달한 시대를 살고 있는 후배 과학자들은 그들의 이론을 100% 입증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걸 보면 천재란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다.
과거 대통령 후보로 나선 허경영 씨가 내세운 공약들은 그의 기이한 언행 때문에 묻혔지만, ‘건국수당’은 ‘기초노령연금’으로 그리고 UN본부 판문점 유치는 지난 민선 6기 최성 전 고양시장의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결혼하면 신혼부부에게 각각 5천만 원씩 주겠다는 공약은 지금의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대를 앞서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비웃고 만다.
지난 11일 기자시사회를 개최한 영화 <얼굴들>을 보고 난 후의 기자들의 공통된 반응은 영화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2시간이 넘는 시간(정확히 132분) 동안 영화를 봐도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은 둘째 치고, 줄거리 요약도 쉽지 않은 작품이다.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의 사회를 맡은 제작사 대표 역시 영화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래서 간담회에 참석한 주연 배우들에게 왜 출연을 결심하게 됐는지 묻자, 현수 역을 백수장은 시나리오를 읽고 무슨 내용인지 몰라 박종환에게 전화를 해서 “출연하기로 했다며?” 물으니 “그렇다”고 하길래 자신도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영화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고 극중 캐릭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해야 완벽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을 텐데 주연 배우조차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출연했다니 말 다했다.
다시 감독에게 이 영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제목의 의미에 대해 사회자가 질문했다. 감독이 뭐라고 한참을 설명했는데 같이 들은 기자들과 사회자까지 하나같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감독이 앞서 언급한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 혹은 허경영(자칭 IQ 430) 같은 급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영화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 평론가상을 비롯해 프랑스마르세이유국제영화제, 런던함국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에 많이 초청도 됐고, 상도 받았다.
기자들에게 배포된 보도자료에 해외 매체는 물론, 평론가들의 이 영화에 대한 호평 일색이다. 대부분 줄거리에 대한 내용이 많이 실리는데, 줄거리 보다는 제작기 등 위주로 보도자료를 만든 것도 눈여겨 볼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호평들을 보고 있자면 몇 년 전 수능문제와 얽힌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해인가 국내 모 대학 국어국문학과 현직 교수의 작품이 수능 언어영역 지문으로 실렸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 지문을 읽고, ‘작가의 의도’를 맞춰야 했다.
작가이자 현직 교수인 이 교수가 직접 이 문제를 풀어 봤는데, 결과는 ‘오답’이었다. 작가 본인이 그것도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자기 작품을 인용한 문제를 틀렸다는 사실은 얼마나 수능 출제가 엉망인지 보여준다.
작가 본인도 모르는 ‘작가의 의도’ 찾기를 출제하고, 정답까지도 정해 놓는 시험.
제작사 대표는 물론, 주연배우조차 이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를 모르겠다는데 대체 이 영화에 호평을 쓴 이들은 과연 진짜로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어려운 작품을 만든 감독보다 그들이 더 천재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굳이 내가 몇 해 전 수능시험 에피소드를 이야기 한 이유는 따로 있다. 1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나름 감독의 의도를 파악한 것처럼 영화 속 특정 장면이 이러 이러한 의도를 갖고 연출된 것이 아니냐고 묻자 감독은 “그건 실수에 의한 것”이라며 “그냥 그렇게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심지어 ‘실수’ 조차 그것을 ‘감독의 의도’로 해석하고선 장황하게 호평을 쏟아내는 평론가들과 매체들의 리뷰를 과연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까?
이쯤 되면 어쩌면 감독이 시대를 앞서간 천재여서 참석자들이 하나같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감독이 본인조차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명확하게 생각이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메가폰을 잡은 것은 아닐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을 연출한 이강현 감독, 이번 작품이 첫 장편 영화다.
다큐멘터리만 만들던 감독이 처음으로 장편 영화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설레기도 하고, 뭔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수 만 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배우에게 연기주문을 할 때도 “갈라진 홍해를 걷듯이 걸어 달라”고 주문했던 것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문을 받고 연기했던 배우는 “지금도 제대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야 관객의 이해도 쉽고, 재미도 있는 법인데 감독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하니 시나리오를 읽은 배우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도 못하고, 여기에 감독의 애매모호한 연기주문은 과연 내가 감독의 주문대로 제대로 연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기계적으로 연기를 하게 된 것 아닐까.
그렇다 보니, 배우조차 이해 못하고 연기한 화면을 보는 관객들은 더더욱 이 영화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파악조차 안 되고, 그래서 감독에게 대체 무슨 영화인지 설명을 부탁하자 돌아오는 것은 또 다시 못 알아들을 말뿐.
이 영화를 만든 이강현 감독이 천재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는 관객들의 평가로 판가름 나겠지만, 굳이 출연 배우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 못한 영화를 보고 난 후 “재미있다”고 허세를 부릴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보지 않기를 권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