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제대로 인정받고 있나요?
배우들이 실명으로 출연한 영화 <내가 사는 세상>은 전태일재단이 제작에 함께 참여한 노동영화다.
괜히 노동영화라고 하니 무슨 대단히 과격한 장면이나 관객을 의식화하기 위한 거창한 영화 같지만, 사실 노동영화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보면 그냥 일반 상업영화와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 21일 낮에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여주인공 김시은도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미술을 업으로 삼은 시은과 음악을 업으로 삼은 민규는 그러나 현실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각각 미술학원 보조강사와 퀵 배송원으로 일하고 있다.
특히 민규는 자신을 꿈을 위해 밤에는 한 클럽에 나가 공연을 하지만, 이제껏 제대로 돈을 받아본 적은 없다.
다른 곳에서 공연 섭외가 와도 클럽의 사장은 민규와 음악의 색깔이 다르네 어쩌네 하면서 막는다.
시은이 볼 때 그런 민규가 참 한심하다. 클럽의 사장이 자신의 앞날을 막는 것도 모르고, 조만간 공연을 하게 해 준다는 말에 계약서도 없이 철썩 같이 그를 믿는 바보가 다 있나 싶다.
여기에 더해 낮에 일하는 퀵 서비스 업체에서 보험료 명목으로 돈을 적게 줬다는 소리를 듣고 당장 다음날 가서 근로계약서도 쓰고, 떼인 돈도 제대로 보험료로 들어갔는지 확인해 보라고 잔소리를 한다.
이틀 날 여자친구인 시은의 말 대로 해서 떼인 돈 80만원을 받긴 했지만, 해고를 당한 민규.
민규는 아무리 애인 공연 포스터라고 해도 클럽 사장이 시은에게 돈 준다는 말도 없이 일을 시키는 것이 어디 있냐고 툴툴거린 시은에게 클럽 사장이 준 디자인비라며 이 돈을 보내 준다.
하지만 결국 시은은 이 돈이 민규가 준 돈임을 알게 되고, 당장 클럽 사장이랑 공연계약서를 써 오라고 닦달한다.
어차피 사람 사이에 믿고 사는 것이지 뭐 자꾸 계약서에 연연하나 싶은 민규와 달리, 시은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보장받기 위해 계약서에 집착한다.
술 기운을 빌려 어렵게 공연계약서 이야기를 꺼내자, 자신을 못 믿어서 이러냐며 버럭 화를 내는 바람에 이틀 날 민규와 개는 클럽 출입금지라는 방이 붙는다.
그래서 형, 동생 하면서 지낸 세월이 있는데 공연계약서 쓰자는 말 한마디로 개와 동급이 되어 버린 민규.
물론 이 영화를 보는 관객 중에는 민규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어차피 사람 사이의 신의가 중요한 것이지, 종이 한 장이 뭐 그리 대단한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들의 생각도 존중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보장 받느냐이다.
미술학원 강사인 시은은 학생들이 보고 그릴 연구작품을 별도 대가 없이 그리라는 원장에게, 예전에 다른 학원 강사이던 원장도 그런 요구를 받고 욕하지 않았냐고 항변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더욱이 극중 배경인 대구 출신인 자신과 달리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제자가 메인 강사로 오게 되었으니, 그의 보조강사나 하라는 요구를 받기까지 한다.
처음 일 시작할 때 명확히 기록한 근로계약서만 있었서도 시은이 이런 대우까지는 받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시은이 계약서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계 종사자들은 이른바 도제식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받았다고 말하기도 뭐한 ‘쥐꼬리 만한’ 돈을 받으며 몇 년 동안 스승 밑에서 일을 한다.
그들이 바보여서가 아니라 나중에 아무개를 스승으로 모셨다는 타이틀이 자신에게 큰 스펙이 된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몇 년 동안 교통비도 제대로 안 되는 돈으로 스승의 그림을 대신 그리거나 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다.
부디 이 영화로 인해 노동의 정당한 가치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다음 달 7일 개봉.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