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학대 목격하고도 침묵하지 않길…
솔직히 이런 류의 영화를 보면 참 가슴이 아프고, 정신이 멍해진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한 전직 사회복지사이기에 더욱 더 영화에 동화(同化) 되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영화는 2005년 8월 경북 칠곡군에서 일어난 ‘동생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점은 관객들에게 분노와 눈물을 동시에 선사한다.
바로 이동휘, 유선 주연의 영화 <어린 의뢰인>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김혜숙의 큰딸이자 ‘다빈이’ 엄마 강미선 역으로 억척스러운 워킹맘이자 딸을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유선이 이 영화에서는 ‘다빈이’와 ‘민준이’의 계모로, 아이들이 성가시다는 이유로 아동학대를 일삼다 결국 민준이를 때려죽이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죽은 엄마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다빈(최명빈 분)이와 민준(이주원 분)이 앞에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아빠가 어느 날 지숙(유선 분)을 새엄마라고 데리고 온다.
이미 아빠로부터 방임된 어린 두 남매(10살, 7살)는 엄마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동생 민준이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지숙은 다빈을 개 패듯이 팬다. 동생한테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 가르쳤냐는 게 이유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남매가 눈에 거슬릴 때마다 그녀는 다빈이를 두들겨 팬다.
결국 참다못한 다빈이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경찰에 신고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근무 중인 정엽(이동휘 분)과 만나게 된다.
원래 정엽은 변호사이지만, 누나가 하도 취직하라고 닦달해 억지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동PA)에 사회복지사로 취직한 상태이기에 남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마음이 없다.
여기에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그토록 바라던 ‘서울 입성’의 꿈이 실현되자 그는 입사한지 얼마 안 되는 아동PA를 박차고 나가 서울의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다.
비싼 업무용 외제차와 좋은 집 등 드디어 성공 가도를 달리며 한껏 취해있는 그에게 여전히 연락하는 다빈, 민준 남매는 달갑지 않은 존재다.
그러다 민준이가 다빈이에게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다빈이 담임으로부터 전해들은 그는 분명히 뭔가 있다는 직감에 다빈이를 돕기 위해 로펌을 그만두고 다시 다빈이에게 돌아간다.
미성년자는 처벌 받지 않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 다빈이 계모가 죄를 다빈이에게 뒤집어씌운 것이지만, 표면적으로는 다빈이의 자백이 있기에 사건은 일단락 된 후다.
남매가 도움이 필요해 전화 했을 때 자신이 귀찮아하지 않고 잘 받아줬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니 이게 다 자기 잘못 같아 그는 다빈이를 설득해 자백을 번복시키려 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새엄마에게 협박을 받은 다빈이는 아예 말문을 닫아 버린다.
다빈이가 계모에게 두들겨 맞을 때 현장을 잡아 일단 부모를 아동학대와 방조죄로 각각 고소하는데는 성공하지만, 여전히 입을 열지 않는 다빈 때문에 사건은 답보(踏步) 상태다.
그런 가운데 결정적인 증거가 등장하고, 다빈이가 새엄마의 악행을 증언하면서 결국 친부와 계모는 실형을 선고 받게 된다.
아무리 영화지만, 실제 아역 배우를 두들겨 패는 장면을 찍어야 했던 유선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촬영 전날부터 마음이 무거웠다고. 더욱이 ‘컷’ 소리가 나면 다시 ‘유선’으로 돌아와 (자신이 아동학대를 했다는 사실에) 더욱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연기라지만, 어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아역 배우가 트라우마가 생길까 싶어 이건 어디까지나 촬영일 뿐이고 이 영화를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의도라고 몇 번이나 아역 배우들에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또 촬영 전부터 촬영하는 내내 심리상담사가 아역 배우들의 정서관리를 도왔다고 한다.
영화에서 다빈은 정엽에게 묻는다. “엄마는 어떤 느낌이냐?”고. 그리고 법정에서 다시 정엽이 똑같은 질문을 지숙에게 던진다.
엄마 없이 자란 지숙은 아이들에게 밥 해 주고, 빨래만 해 주면 그게 엄마의 도리를 다 하는 것인 줄 알고 자신이 아이들을 위해 얼마나 희생적이었는지 모른다며 항변한다.
하지만, 반찬 좀 식탁에 흘렸다고 바로 귀 싸대기가 날아오는 그런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안락하고, 심신의 안정을 느껴야 할 집이 지옥으로 변하게 된다.
장규성 감독은 이 영화가 특별히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의도는 없지만, 주위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모른 척 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기사를 통해 어딘가에서 학대 받고 있는 아동들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만큼 아동학대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우리는 남의 집 자식 교육에 왜 관여하냐며 혹은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까 싶어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넘어간다.
부디 <어린 의뢰인>이 더 이상 관객들이 아동학대를 목격하고도 모른 척 하지 않도록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참고로 영어제목인 My First Client는 사회복지사로서 ‘첫 대상자’이자, 변호사로서 ‘첫 의뢰인’을 의미하는 중의법적 표현이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