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 한 장이 불러온 일
독일과 아제르바이잔 합작 영화인 <브라 이야기>가 오는 16일 개봉을 앞두고 9일 기자시사회를 개최했다.
겨우 기찻길 하나를 두고 양쪽으로 나란한 가옥들이 즐비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의 어느 마을에선 골목 대신 기찻길 위에서 일상을 보낸다.
아이들은 뛰어 놀고, 주부들은 기찻길을 가로질러 양옆 벽에 빨랫줄을 묶어 속옷이며 이불을 널기도 한다.
그러다가 기차가 오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일사분란하게 기찻길 옆으로 피신한다. 그런데 번번이 빨래를 제대로 다 거두지 못해 몇몇 빨랫감은 기차 앞 유리를 가리곤 한다.
그러면 시야확보를 위해 기관사는 급한 대로 빨랫감을 거둬들였다가 퇴근길에 주인에게 돌려주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곧 은퇴를 앞둔 기관사 놀란(프리드랙 미키 마놀로비치 분)은 하늘색 레이스 브라 하나를 거둬들인다.
그는 이 브라의 주인을 찾기 위해 마을의 여러 여자들을 찾아다니며 혹시 브라의 주인인지 묻는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관객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다만, 이 영화는 무성(無聲)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사가 거의 없다. 기차에 치일 뻔한 어린 딸의 이름을 부르는 엄마 내지는 이따금 감탄사 정도가 대사의 전부다.
그나마 배경음악 등이 이 영화가 무성영화가 아님을 관객들에게 인지시킬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에 출연한 이들의 국적이 아주 화려하다. 우선 주인공인 프리드랙 미키 마놀로비치는 옛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며, 드니 라방은 프랑스, 피즈 베가는 스페인, 슐판 하마토바는 러시아, 마이아 모겐스턴은 루마니아 출신, 프랑키 왈락은 프랑스 출신이다.
아마도 이렇게 다국적 배우가 모인 탓에 아예 대사를 없앤 것이 아닌가 싶다.
이에 대해 헬머 감독은 대사가 없으면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어서, 오히려 시나리오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지만 관객에게 특별한 체험을 선사하기 위해 대사를 없앴다고 설명했다.
브라의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약간의 노출은 있으나, 결코 야하지 않은 것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클로즈업 샷과 슬로우 모션을 통해 브라가 야한 물건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의류라는 생각을 관객들에게 심어주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영화의 국내 등급은 12세이상 관람가다.
지금도 저런 동네가 실재(實在)할까 싶을 정도로 가난한 동네를 배경으로 한 탓에 바쿠 구청에서 촬영허가를 내주지 않아 몰래 촬영했다는 이 영화는 현대사회에서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브라 이야기>는 오는 16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