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가 남산으로 향했더라면?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끔 만약에 그때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해 보곤 한다.
만약에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선이 그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한반도는 어땠을까? 만약에 9·11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담 후세인은 아직 살아있을까? 만약에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후 육군본부가 아닌 ‘남산’으로 갔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기까지 40일 동안의 일을 오롯이 스크린에 담았다.
총 52만부나 판매된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원작의 경우 2년 2개월 동안이나 동아일보에 연재될 정도로 내용이 방대해 그중 10·26사건이 일어나기까지 40일 동안의 이야기만 스크린에 옮겼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김규평(이병헌 분),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은 곽상천(이희준 분), 미국으로 망명한 전 중앙정보부장인 김형욱은 박용각(곽도원 분)으로 아예 다른 이름을 사용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사람들이 즐겨 부르던 ‘박통’(이성민 분)으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전두혁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관객들이 한 눈에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캐릭터도 섞여 있다.
오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이 영화가 설 연휴 즈음에 개봉한다면 분명히 이번 설날에 가족끼리 모여 당시를 이야기하면서 설전이 이어질 것이고, 이는 총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직도 ‘박통’에 대해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이로 기억하는 이도 있으나, 젊은 세대들은 특히 영화를 보고 나서 ‘혁명의 배신자’로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이 이어지면 분명 국회의원 총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런 논란이 계속될수록 영화는 <마약왕>의 참패가 아닌 <내부자들>의 흥행을 다시 한 번 구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연출한 우민호 감독은 이 영화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지도 않고, 공과(功過)를 다루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 탓에 결말은 이미 관객들이 다 알고 있는 그대로다.
1979년 10월 26일,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는 궁정동 안가에서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먼저 총을 쏜 후 곧바로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쏴 죽였다.
그리고 그는 안가에 미리 와 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남산에 위치한 중앙정보부로 데려가 군을 장악하려다가 그러지 말고 육군본부로 가자는 정 총장의 말 한마디에 육군본부로 차를 돌렸다가 바로 군(軍)에 의해 제압당한 후 군법 재판에 넘겨져서 사형 당했다.
만약 그때 김재규가 원래 계획대로 차를 그대로 중앙정보부로 몰았다면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권을 잡는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
영화에서 김규평(실존인물 김재규)은 박정희 대통령과 ‘혁명’을 도모했을 때의 초심을 잃고 독재를 일삼는 ‘박통’과 ‘곽상천’을 제거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서 더 이상 ‘박통’이 집권하는 것을 막겠다는 일념 하나로 거사를 치른다.
이런 부분은 관객들에게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우 감독은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는 관객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물론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상업영화다. 그래서 김소진이 맡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여성 로비스트 역할이나 마지막에 전두혁이 박통의 금고를 터는 장면 등은 가공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해부하려는 원작의 정신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우민호 감독의 설명이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무시되던 그 시절에 대해 온 가족이 허심탄회 하게 이야기 하면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