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노숙자는 청소 대상이 아니다
종이박스에서 자는 까닭에 ‘종이박스 노숙자’로 불리기도 하는 이란의 노숙자들.
이란 정부는 테헤란에서 열리는 국제적 행사를 앞두고 ‘도시정화’ 차원에서 이들을 붙잡아 노숙자 쉼터에 억류한다.
이번 제12회 DMZ국제다큐영화제를 통해 아시아 국가에 처음 선을 보인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거리의 유령들>은 이들에 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실제 노숙자들의 음성을 그대로 사용했지만, 이들의 모습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 새롭다.
캐릭터를 만들 때 어차피 실제 그 인물과 똑같이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인권침해 요소도 없다.
카메라 앞에서 증언하길 꺼려할 수 있는 이들로부터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한 장치로서 훌륭하다.
이 작품엔 여러 노숙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시절 노숙자들이 무서워 그 앞을 지나갈 땐 눈을 꼭 감고 지나가던 사람이 정작 장성한 지금 자기가 노숙자가 됐다는 이야기는 물론 죽고 싶은 것이 자기의 소망이라고 말하는 ‘소망’(wish)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한 노숙자, 또 12살 때 언니와 형부 때문에 마약에 손을 덴 후 어느 순간 돈을 요구받아 거리에서 몸을 팔다가 한 남자의 집에 끌려가 강간을 당했다는 노숙자까지.
다양한 사연을 지닌 노숙자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육성을 통해 공개된다.
국제 행사가 끝난 후 쉼터에 있던 남성들은 대부분 풀려났지만, 여성들은 아직도 그곳에 ‘감금’되어 있다고 한다.
30여 년 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에게 깨끗한 도시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부랑인 시설을 지어 노숙자 뿐 아니라, 전날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자던 직장인은 물론 나이가 어려서 자기 집 주소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어린이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다 시설에 수용했던 과거 우리의 과오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원해서 노숙자가 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처럼 다양한 이유로 노숙자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꼭 개인 혼자 짊어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마약 중독으로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면 마약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예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도와줄 일이다.
또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한 여성의 사연처럼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와 노숙자가 됐다면,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가정폭력을 예방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일 것이다.
그런 부분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외국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종이박스 노숙자’가 많으면 창피하다며 무조건 시설에 가두는 것은 인권침해가 분명하다.
특히 여성의 인권이 취약한 이란에서 여성 노숙자를 어떻게 대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실제로 감독과 노숙자들의 인터뷰를 도와주고, 노숙자 쉼터의 실상을 감독에게 고발한 사회복지사는 결국 쉼터에서 해고됐다.
노숙자들 역시 거리의 일부이고, 동등한 시민이지 우리 눈에 보여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받아야 하는 ‘거리의 유령들’이 아니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