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독재의 ‘끝판왕’ 보여줘
몇 해 전부터 우리는 정부에 불만이 있을 때마다 유행어처럼 “이게 나라냐!”며 따진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예배와 온라인 수업을 권장하는 정부에 대해서도, 고위 공직자의 자녀가 이른바 ‘아빠 찬스’ ‘엄마 찬스’를 쓴 것으로 의심 받을 때도 “이게 나라냐!”고 외치며 광장에 모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클래스는 되어야 “이게 나라냐!” 소리를 할 수 있지 싶다.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더니 닥치는 대로 마약 사범을 총살시켜 버린다. 재판 따위는 거치지도 않고 거리에서 경찰이 그냥 총으로 쏴 죽이면 끝이다.
이렇게 ‘실적’을 많이 올릴수록 대통령은 경찰을 추켜세우고, 한껏 고무된 경찰은 더 많은 실적을 위해 마약의 ‘마’자도 모르는 선량한 사람들을 이유도 없이 유괴한다.
유괴한 후, 돈을 주면 풀어주겠다면서 만약 돈을 주지 않으면 마약 유통책이라고 누명을 씌워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이런 사실을 제보 받은 인권위원회에서 기자들을 대동하고 현장을 급습해 비밀 공간에 갇혀있던 시민들을 구조한다.
이 과정에서 인권위원은 경찰에서 체포에 관한 어떤 서류도 없이 왜 불법 체포, 구금 했는지를 따져 묻자 경찰은 이들을 풀어줄 것처럼 하면서 빈 종이에 강제로 지문 날인을 한다.
이제 ‘서류’가 갖춰졌으니 정식으로 이들을 경찰서로 데리고 가 가둔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린지 의아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영화 속 이야기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두테르테가 집권하는 필리핀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번 제12회 DMZ국제다큐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 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아수왕>은 지금 필리핀에서 국가에 의해 이뤄지는 인권 탄압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사람들은 두테르테를 ‘아수왕’(ASWANG)이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필리핀 전설 속 괴물인 아수왕은 강가에 사는데 때로는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수왕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는 탓에 공포의 대상이다.
물론 마약을 하는 것이 옳다거나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서민들이 마약에 빠지게 된 근본적 원인을 뿌리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단지 마약사범이라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경찰이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은 결코 상식적인 행정집행이라 볼 수 없다.
마약사범 심지어 마약을 하지 않은 사람까지도 마약사범이라고 누명을 씌워서 총살을 하면서, 정작 ‘마약왕’으로 불리는 마약 대규모 공급책은 건드리지도 않는다.
필리핀에서 마약을 없애려면 마약 공급책을 일망타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텐데도 말이다.
하지만 마약 공급책은 가만 두기 때문에 아무리 마약사범을 쏴 죽여도 계속해서 마약사범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약을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사람은 찾기 힘들다.
‘마약왕’이 건재(健在)하는 한 자신의 돈 벌이를 위해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마약을 팔 것이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마약중독자가 생길 것이다.
두테르테가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약 공급책을 일망타진 하는 한편 마약중독자들을 대상으로 마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재활에 힘을 쓰는 것이 올바른 정책임을 알 텐데 이미 공포정치와 독재정치로 국민들을 굴복시킨 그의 포악함은 끝을 보여준다.
<아수왕>을 보는 내내 진짜 이게 나라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한편,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적어도 “이게 나라냐!”며 광장에서 소리쳐도 총살당하지 않으니 자유가 보장된 ‘나라다운 나라’에 살고 있구나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