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테슬라 형
어린 시절 키우던 ‘마착’이라는 고양이 등을 쓰다듬다 정전기를 알게 된 테슬라는 후에 교류 전기를 만든다. 이후 에디슨 밑에서 일하지만, 교류 전기에 반대하는 에디슨과 결국 헤어진다.
이후 테슬라는 투자를 받아 창업을 했으나 동업자들에게 사기를 당해 사업을 말아먹고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처지가 된다.
1년 후 에디슨 밑에서 주급(週給) 15달러를 받던 그에게 월급 250달러를 주겠다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
기사회생한 그는 연구를 계속해 교류 전동기에 대한 특허를 내 이를 웨스팅하우스에 현재 시세로 100만달러 이상을 받고 판다.
여기에 로열티까지 받기로 한 까닭에 그는 말 그대로 돈방석에 앉은 듯했다.
이에 시기한 에디슨이 테슬라의 교류 전기를 이용해 사형(死刑)을 시연해 보이면서 교류 전기의 위험성을 부각한다.
하지만 테슬라는 만국박람회에서 시카고 전체 전력 사용량의 3배나 되는 교류 전기를 선보이면서 교류 전기에 대한 안전성을 인정받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테슬라가 무척이나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웨스팅하우스에서 테슬라에게 지불할 로열티가 너무 많아져 회사에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테슬라는 로열티 조정 요구를 무시한다.
이후 1899년 콜로라도에서 무선으로 송전(送電) 할 수 있는 일명 ‘테슬라 코일’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가 이 연구를 시작한 것은 저렴한 가격으로 산간이나 오지에 전기를 보급할 수 있기 때문인데, 저렴한 요금을 받기 위해 거액의 연구비를 투자해 달라는 그의 말은 결국 투자자의 등을 돌리게 했다.
결국 그는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그의 재산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크로아티아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천재 과학자 에디슨도 무릎 꿇게 만들었던(실제 테슬라가 ‘테슬라 코일’을 연구할 당시 에디슨은 자신이 테슬라의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전기사업을 접고 채광(採鑛) 사업에 뛰어들었다 400만달러나 날렸다.) 그였지만, 결국 당시에는 거대한 부를 축적하지 못했다.
레이더나 리모컨 등 현재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을 만들었던 니콜라 테슬라. 자신의 사익 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등 공익적인 부분에 중점을 뒀기에 비록 무일푼으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장례식에 무려 2천 명이나 되는 조문객들이 참석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지난해 8월에 개봉한 영화 <커런트 워>가 에디슨의 이면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뒀다면,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테슬라>는 천재였으나 공익에 더 신경을 써 무일푼으로 살다간 테슬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