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망한 게임을 아직도 하는 이유
IMF 때인 1999년 많은 게임 유저들에게 희망을 준 RPG(Role Play Game) ‘일랜시아’. 20년이 지난 지금 게임 개발사인 넥슨은 전혀 관리를 하고 있지 않다.
이에 게임 전문 유튜버들은 이 게임을 ‘망겜’(망한 게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여전히 이 게임을 하는 이들도 아직 많고, 그 중 한 명인 ‘내언니전지현’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박윤진 감독이 이를 반박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는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왜 아직까지 이 게임을 하는지 인터뷰를 했다. 그들의 대답은 “나도 모르겠다”이었다.
하기야 영화 한 편보다도 적은 용량이라 그래픽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배경음악을 켜면 충돌이 나 게임이 불가능 하고,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자동으로 실행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불법으로 돌려도 아무런 제제가 없는 그런 게임을 왜 아직까지 하는지 감독 스스로도 의아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개발사가 관리를 포기한 게임을 여전히 하는 이유가 있을 터. 이에 대해 유저들은 바로 바로 눈에 보는 성취감을 꼽는다.
매크로를 통해 희귀 아이템을 대량으로 사들여 300배의 수익을 얻을 수도 있고, 다른 게임과 달리 올라갈 수 있는 레벨의 제한이 없어 이로 인한 성취감 말이다.
하지만 2000년 ‘가위 바위 보’로 상대의 아이템을 획득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수많은 도박중독자를 만들어 냈고, 이로 인해 당시 이 게임을 즐기던 유저 절반이 탈퇴했다.
결국 넥슨은 가위 바위 보 시스템을 폐지했으나 여전히 유저들끼리 몰래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어쩌면 이런 요소 때문에 일랜시아가 망겜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아픔을 다독여 주기도 하면서 비록 온라인에서지만 서로 가족처럼 지낸다. 아마도 이런 이유가 아직 이들을 일랜시아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런 가운데 어떤 한 유저가 악의적으로 다른 유저들의 게임이 자동종료 되도록 하는 팅버그를 퍼뜨려 다들 피해를 입었지만 차마 회사에 이를 알릴 수 없었다. 이참에 매크로를 막으면 게임할 맛이 안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로 둘 수 없던 ‘내언니전지현’은 넥슨 노조와 고객상담실을 찾아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고, 며칠 후 문제가 해결됐다.
자칫 이 일로 유저들을 잃을 뻔했으나 한 사람의 노력으로 많은 이들이 여전히 일랜시아를 계속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일랜시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자 회사 측은 아직 일랜시아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또 이후 12년 만에 대규모 이벤트도 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게임 속 ‘내언니전지현’과 현실의 ‘나’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비록 게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지만, 게임을 실행하는 이들은 가상현실 속 게임 캐릭터가 아닌 현실세계의 실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게임 안에서 서로 인정(人情)이 넘친다.
게임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사람 사는 일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12월 3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