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여성운동 앞장선 헬렌 레디
올리비아 뉴튼존, 앤 머리에와 함께 세계 3대 디바로 꼽히는 헬렌 레디(Helen Reddy)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아이 엠 우먼>이 10일 기자시사회를 개최했다.
총 2,500만 장의 앨범을 판매한 헬렌 레디는 1941년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가족들이 공연업(show business)을 한 까닭에 어려서부터 남들 앞에 서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음반사와 계약을 위해 1966년 3살 딸 트래이시와 함께 미국 뉴욕으로 건너왔다. 영화는 이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싱글맘인 그녀는 부푼 꿈을 안고 단돈 230불을 갖고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음반사에선 ‘비틀스’라는 신인 그룹을 이야기하면서 여자가수에 대한 수요가 없다며 퇴짜를 놓는다.
허름한 호텔 방에서 딸과 지내는 그녀는 먹고살기 위해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家長)이 아니라는 이유로 밴드보다 적은 돈을 받아야 했다. 이에 항의하자 클럽 사장은 그녀가 불법체류자라는 걸 꼬투리 잡아 잘라 버린다.
그때 만난 사람이 한 신문사에서 라이프 섹션과 가끔 음악 기사도 다루는 릴리언(다니엘 맥도널드 분)이었다.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고, 릴리언은 헬렌(틸다 코브햄-허비 분)의 월세 모금을 위한 생일파티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헬렌은 매니저인 제프 월드(에반 피터스 분)를 만나게 된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헬렌과 어릴 적 엄마를 여윈 제프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직장에서 대마초를 팔다가 잘린 제프는 자신의 헬렌의 매니저를 하겠다며 성공을 위해 LA로 이사를 가자고 말한다.
1968년, 제프는 자신이 돈 좀 번다고 헬렌에게 집안일을 떠넘기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은 갈등을 빚게 된다.
언제는 가수로서 성공시켜 준다며 LA로 데리고 와서는 헬렌의 공연은 잡아주지도 않고, 여자가 집안일이나 하는 게 맞다는 식으로 말하는 제프의 모습에 헬렌도 관객도 모두 화가 나긴 마찬가지다.
헬렌의 닦달에 제프는 캐피탈 레코드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려 앨범을 낼 기회를 얻어내고 ‘I Don’t Know How To Love Him’으로 빌보드차트 13위에 오른다.
이후 그녀는 ‘I Am Woman’을 직접 작사, 작곡해 음반사에 선보이지만, 음반사 직원들은 가사가 남성혐오로 가득하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남편 제프는 여성들이 분명히 이 노래를 좋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적중이 맞았던 것일까? 헬렌 레디는 이 노래로 빌보드차트 36위를 시작으로 12위를 거쳐 1위를 거머쥔다.
이때부터 그녀는 최고의 명성과 부를 얻게 된다. 미국에서 여성 최초로 신용카드를 발급받는가 하면, 차나 집을 살 때는 물론 언제나 현금만 사용할 정도로 그녀의 수중엔 현금이 넘쳐났다.
하지만 이렇게 잘 나가는 것이 꼭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 절친인 릴리언이 천식 발작으로 세상을 떠나도 워낙 공연 일정이 빡빡해 장례식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다.
이후 세월이 흘러 코카인에 빠져 그 많은 재산을 제프가 날려 먹어서 약국에서 약 하나도 제대로 사지 못할 지경이 된다.
그런 그녀에게 1989년 전미여성협회에서 집회에 참석해 I Am Woman을 불러달라는 요청을 해온다.
은퇴 후 조용히 LA에서 살던 그녀는 딸 트래이시의 격려로 워싱턴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해 여성 인권을 상징하는 노래가 된 I Am Woman을 열창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를 연출한 문은주 감독은 호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헬렌 레디와 삶이 닮았다. 문 감독은 대구에서 태어나 4살 때 호주로 이민 가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영화감독이다.
문 감독은 1970년대 라디오에서 헬렌의 I Am Woman이 흘러나오면 엄마와 친구들이 차 창문을 내리고 손을 내밀며 따라부르던 걸 보며 자랐다.
“거짓말에 속고 속이며 무시당하며 살아온 세월. 이제 그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어. (중략) 나는 뭐든 할 수 있어. 나는 강해. 나는 꺾이지 않아. 나는 여자”라는 가사는 양성평등 개헌안을 추진하던 여성들에게 큰 힘이 되어 줬다.
그리고 이 가사는 세월이 흐른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도 공감 가는 내용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다.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직종에서조차 여성이라는 이유로 적은 임금을 받거나 ‘유리천장’에 갇혀 일정 계급 이상으로 승진하기가 쉽지 않다.
여성이라고 집에서 살림만 해야 하거나 제대로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기던 시대는 지났다.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교육을 받고, 평등에 대한 의식이 생겼다.
그런 까닭에 이 노래의 첫 소절 “나는 여자. 나의 포효를 들어라. 무시하기에는 우린 너무 커졌지. 모르는 척 살기에는 너무 많은 걸 알게 됐어”라는 가사는 이 시대 여성들의 세상을 향한 외침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2020년인 현재까지도 미국에서 양성평등 개헌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헬렌이 I Am Woman을 발표한 1970년대에야 양성평등 개헌안이 통과되면 남녀공용 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식의 ‘가짜뉴스’가 통했나 몰라도 이제까지도 양성평등이 헌법에 명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여성들의 권익이 많이 신장 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평등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마지막 장면에서 헬렌이 집회 연단(演壇)에 올라 노래를 부를 때 옆에서 수화통역을 하는 모습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이 장면의 배경은 1989년이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수화통역사를 배치한 게 아니라면, 미국에선 이미 1980년대에도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화통역사 배치를 당연시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통령 후보자 연설처럼 국가 중요행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다못해 연설 외에 노래까지도 수화통역을 한다는 것은 청각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잘 보여준다.
물론 우리나라도 일부 TV 뉴스나 정부의 중요 발표 때는 수화통역이 제공되고 있긴 하지만 가수들의 콘서트 무대 등에서 수화통역이 이뤄지는 걸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얼마 전 한 마트에선 법으로 보장된 훈련 중인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출입을 막고, 훈련자에게 윽박지르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부분을 보면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더 나아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우리보다 얼마나 더 진보했는지 알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싸우다 올해 9월 29일 생을 마감한 헬렌 레디의 삶을 통해 큰 울림을 선사할 영화 <아이 엠 우먼>은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