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아내 연기 부탁한 남자
2차 세계대전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넬리는 친구 레니의 도움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얼굴이 완전히 망가진 넬리에게 의사는 기왕에 성형수술 할 건데 예전보다 훨씬 예쁘게 변신해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게 어떻냐고 권하지만, 다시 남편과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넬리는 예전 모습 그대로 수술해 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넬리는 거리의 악사로 활동 중인 한 시각장애인 바이올린 연주자의 도움으로 ‘피닉스’라는 클럽에서 남편 조니를 찾아낸다.
하지만 조니는 눈앞에 있는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넬리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서야 넬리를 쳐다보며 “내 부인과 많이 닮았다”며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사실 넬리의 가족들도 수용소에 끌려가 모두 죽었는데, 이로 인해 넬리에게 막대한 상속이 이뤄진 후였다.
조니는 넬리에게, 자기 부인 넬리와 닮았으니 당신이 넬리인 척 해서 넬리의 유산을 받아내 절반씩 나누자고 제안한다.
제3자가 보기엔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 싶지만, 조니 입장에선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 중 살아서 돌아온 이가 거의 없으니 당연히 아내가 죽었다고 생각해 정작 아내가 눈앞에 나타났음에도 아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
넬리 역시 예전처럼 조니와 다시 살기 원했던 터라 자신이 아내 넬리이든, 넬리를 연기하는 여자이든 이 남자와 함께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받아들인다.
이에 조니는 넬리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수용소에 가기 전 넬리가 입었던 옷과 구두를 내어주며 넬리처럼 외모를 꾸며 보라고 한다.
또 넬리가 자신에게 쓴 편지를 넬리에게 보이며, 넬리처럼 글씨를 써 보라고 말한다.
넬리는 조니의 요구대로 넬리처럼 입고, 넬리와 똑같은 필체를 구사하지만 여전히 조니는 넬리가 넬리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그는 단지 죽은 아내의 유산을 가로채 떵떵거리고 사는 것만 관심 있어 한다.
이에 보다 못한 레니는 넬리에게 사실 네가 수용소에 갇히게 된 게 다 남편 탓이라며, 네가 수용소에 가자마자 바로 이혼한 남자인데 지금 뭘 하는 것이냐며 진실을 이야기 한다.
영화 <피닉스>는 <운디네>와 <트랜짓>을 연출한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작품으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넬리의 삶을 통해 전쟁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바꿔 놓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극중 넬리는 성형수술을 통해 예전의 모습 그대로 돌아가지만, 한 번 깨진 남편과의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사람도 그대로고, 외모도 그대로이지만, 정작 조니는 아내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무리 넬리가 조니가 입으라는 옷을 입고, 넬리처럼 글씨를 써도 조니는 넬리를 넬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알렉산더 클루게의 소설 <사랑에 대한 한 실험>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
소설 속에서 한 연인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후, 나치가 아무리 분위기를 조성해 줘도 다시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나치가 만든 허무주의와 같은 상처를 뛰어넘어 다시 사랑, 연민, 공감, 삶의 감정을 재건하는 것이 가능할까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영화 <피닉스>는 오는 22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