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전태일이 꿈꾼 세상
지난달 개최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상영된 애니메이션 <태일이>가 12월 1일 개봉을 확정 짓고 11일 기자시사회를 개최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전태일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누군가는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듣고, 50년 전 이야기를 아직까지 하냐며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다.
1970년 11월 13일 세상을 떠났으니 이틀 후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꼭 51년이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는 그의 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인 나라, OECD 국가 중 연간 노동시간 4위인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한 대통령 후보는 1주일에 120시간 일하고 쉬는 것도 필요하다며 더 높은 노동 강도를 예고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동자를 ‘일하는 기계’로 여긴다. 심지어 아직 고등학생인 실습생에게 시켜선 안 될 위험한 일을 시키다 죽게 만드는 게 현실이다.
아직 살아있으면 올해 73세일 전태일이 2021년의 대한민국을 바라본다면 뭐라 할까?
그때도, 지금도 근로기준법은 있지만, 노동자(몸을 움직여 일하는 사람)들은 근로자(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길 강요받는다.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 보다는 회사에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열사 전태일’의 모습에 초점을 둔 것은 아니다. 연출을 맡은 홍준표 감독은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다룰 수 있는 게 애니메이션의 장점”이라며 영화 <청년 전태일> 등 그동안 전태일을 다룬 작품처럼 너무 무겁지 않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런 까닭에 <태일이>는 전태일이 왜 그리고 어떻게 ‘열사 전태일’로 변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재단사가 되면 돈도 많이 벌고,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미싱사와 미싱 보조 여공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미싱사를 관두고 재단사 보조로 전직한다.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사장에 의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정식 재단사가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 대목을 앞두고 일의 양은 늘었지만, 오히려 급여는 줄었다.
어린 여공들은 밥도 제대로 못 먹어 수돗물로 배를 채워야 했다. 한 미싱사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폐병에 걸렸고, 그래서 해고됐다.
이런 현실을 본 태일이 사장에게 미싱사의 치료비를 요구하고, 환풍기 설치 등 노동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자 호의적이었던 사장은 태도를 바꿔 태일이마저 해고한다.
이에 그는 청계천에서 일하는 재단사들과 함께 ‘삼동친목회’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노동실태 조사에 나선다.
하지만 정부 당국에선 그들의 노동환경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온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야 하는 판에 환풍기 설치하고, 하루에 열 몇 시간씩 일하는 것 따위는 중요치 않다고 말한다.
결국 전태일은 데모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로 한다. 그러나 그를 도와주려던 줄 알던 경찰에게 데모를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가 오히려 계획이 수포가 될 처지에 처한다.
이에 그는 대선을 앞두고 연설을 위해 후보가 청계천을 지나갈 시간에 맞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라며 몸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 의해 이 사건은 세상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때로부터 51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그때와 비슷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전태일의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둔 이 작품을 통해 20대 전태일이 그토록 원했던 세상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