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갈등 생각해 보게 해
일찍이 귀덕(정영숙 분)은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두 아들을 키웠다. 어디 가서 ‘아비 없는 자식’ 소리 안 듣게 하려고 예절원을 운영하면서 반듯하게 키우려고 애썼다.
또 기죽지 말라고 늘 좋은 것만 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 까닭에 둘째 아들(양재원 분)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귀덕은 곱게 자란 큰며느리 혜란(조은숙 분)은 마음에 들지만, 양계업에 종사하는 집 딸인 둘째 며느리 인숙(김지영 분)은 영 마음에 안 든다.
자기 부모 닮아 ‘백정’의 삶을 살까 싶어 색안경 끼고 보기 시작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안 든다.
어떻게 찻물도 하나 제대로 못 끓여서 너무 뜨겁다고 찬물을 섞다니 참 마음에 안 든다.
그런 인숙을 곁에서 바라보는 혜란은 안타까워 인숙을 돕기로 마음 먹는다. 서방님이 미국에서 바람났다는 소식에 혜란은 시어머니 몰래 비행기 표와 용돈까지 준비해서 인숙에게 건넨다.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손윗동서 혜란의 배려에 인숙은 너무나 고마워하면서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미국으로 간다.
하지만 곧 오겠다고 말하고 떠난 지 꼬박 20년이 지나서야 귀국한다. 그것도 남편과 이혼 절차를 밟기 위해서 잠깐 온 것뿐이다.
교환교수로 한국에 미리 와 있던 남편은 자기가 어머니를 보살필 테니까 같이 모시고 살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다.
20년 전 그렇게 무섭던 시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 못 한다. 심지어 20년 만에 본 막내며느리에게 ‘아줌마’라고 부른다.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여도 그렇지, 시어머니 싫어서 미국으로 도망갔는데 이제 와서 치매까지 걸린 시어머니랑 같이 살라니 너무도 싫다.
옆에서 지켜보던 혜란은 어차피 자기는 감당이 안 되는 까닭에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아니 이 남자가 날 떠봤나 싶어 인숙은 짜증이 확 난다. 아들들은 괜히 마음 약해져서 입소 못 시키고 다시 모시고 올 수 있으니, 며느리끼리 모시고 가겠노라며 혜란은 인숙과 귀덕을 차에 태운다.
썩 따라가고 싶진 않지만, 그래 그렇게 날 구박하던 시어머니의 말로(末老)를 지켜보며 통쾌함이나 느껴보자 싶어 인숙도 기꺼이 동행한다.
하지만 치매 걸린 노인과 차 타고 장거리를 이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으니 꼼짝 못하게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진짜 너무 힘들어서 인숙은 혜란과 잠시 고속도로 갓길에 내린다. 뒤에서 빵빵거리자 혜란은 차를 잠깐 빼는 척하면서 그길로 휴게소로 냅다 달린다.
와 이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어 황당해하는 인숙에게 혜란은 20년 전 인숙이 미국으로 간 후, 귀덕의 모든 화를 받아내느라 죽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귀국한 게 괘씸해서 그랬다고 말한다.
그렇다. 2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니 호랑이 같던 시어머니만 변한 게 아니었다.
평소 둘이 있을 땐 말 편하게 하라며, 자기에게 그렇게 살갑게 대하던 손윗동서는 악녀가 되었다.
이제는 자기가 나이는 어려도 손윗동서인데 감히 어디서 말을 놓느냐며 으름장을 놓는데, 인숙은 적응이 안 된다.
영화 <인연을 긋다>는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가족의 인연을 맺은 세 여자의 로드 무비다.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시어머니는 계속 집에 데려다 달라며 생떼를 쓴다.
급기야 셋이 식당에서 밥 먹다가 잠깐 사이에 탈출해 택시를 타더니 집에 데려다 달라며, 쪽지와 차비 100만 원을 건넨다.
시어머니가 계속 집에 데려다 달라는데, 요양병원으로 가는 게 맞나 싶어 며느리들의 마음은 무겁다.
그래도 도저히 제대로 모실 수가 없다. 작은며느리가 미국으로 간 후, 20년 동안 온갖 구박에 시달린 큰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밉고, 귀찮다.
자꾸 어딜 돌아다니는 시어머니를 말리는 것도 힘에 부쳐 끈으로 묶어 놓았는데, 3일 동안 그 사실도 잊은 채 시어머니를 방치한 적도 있다.
자기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게 더 불효 같아 요양병원에 넣기로 결심한 것이다.
시어머니도 자기가 자녀들에게 짐이라는 걸 안다. 사실 택시 기사에게 내민 쪽지엔 요양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써 있었다.
인숙과 둘이 있을 땐 인숙이 미국에 있을 때 몰래 운영하던 고깃집 상호와 주소까지 줄줄 읊을 정도로 정신이 멀쩡하다.
어쩌면, 자녀들 마음 무겁지 않게 하려고 한시도 정신이 온전한 때가 없는 척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에 인숙과 혜란이 여수요양병원에 데리고 가자, “집에 왔다”며 기뻐하는 귀덕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고부갈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 <인연을 긋다>는 오는 26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