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학익진을 스크린에 옮기다
1592년 4월,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15일 만에 한양을 빼앗겼다. 조선을 점령한 왜군은 이참에 명나라까지 칠 생각으로 대규모 병력을 부산으로 집결 시켰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1592년 6월, 한산대첩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천에서 이순신의 거북선을 처음 마주한 왜군은 용 대가리에서 불을 뿜고, 등엔 철갑을 두른 모습이 마치 전설 속 ‘복카이센’ 같아 공포에 휩싸인다.
그리고 이어진 3차 출정에서 이순신(박해일 분)이 당포(통영)로 오자 이를 안 왜군은 길목인 견내량(지금의 통영과 거제 사이의 해협)에서 매복한다.
왜군이 견내량에 있다는 사실을 안 이순신은 즉시 싸우러 가자는 경상우수사 원균(손현주 분)의 의견에 반대한다.
이순신은 한산도 앞 바다로 적을 유인해 학익진을 전개하겠다고 하고, 원균은 무모하다며 반대한다.
하지만 이순신을 믿는 수군 향도(嚮導) 어영담(안성기 분)이 자신이 왜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겠다며 나선다.
3차 출정 4일차, 이순신은 56척의 배를 이끌고 한산도로 향한다. 그 시각 어영담은 왜군을 유인하기 위해 견내량으로 향한다.
안개가 자욱해 서로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영담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왜군에게 포를 쏴 도발한다.
하지만 왜군 수군 최고사령관인 아키자카(변요한 분)는 대응사격만 하면서 적극적으로 교전을 벌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안개로 잘 보이지도 않거니와 우리 측 수군이 포탄을 다 소진해 버리게 하기 위해서다.
이에 어영담은 꿈쩍도 안 하는 왜군을 한산도로 유인하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가 공격하면서 도발한다.
때마침 안개가 걷히고, 왜군은 우리 측에 배가 3척뿐인 걸 알고 총공세를 펼친다.
이에 틀렸다고 판단한 어영담은 백병전(무기 없이 맨몸으로 싸우는 것)을 준비시킨다.
그때 아군이 나타나 지원을 하고, 이에 왜군 일부가 계속 공격한다.
그 과정에서 왜군의 배가 암초에 걸려 꼼짝하지 못하자 어영담이 왜군을 공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군 본진은 꿈쩍도 안 하자, 이순신은 전군을 이끌고 견내량으로 이동한다.
이순신은 학익진(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의 전법)을 완성할 때까지 절대 적군에게 발포하지 않고 기다린다.
이에 참다못한 원균은 이순신의 명령 없이 왜군에게 발포하고, 결국 위험에 처한다. 이때 거북선이 등장해 적의 배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이에 와키자카는 거북선의 약점이 측면이라고 생각해 거북선이 방향을 틀 때 맞춰 거북선 측면을 공격한다.
그런 와중에도 이순신은 적의 배가 50보 앞까지 다가올 동안 학익진을 유지한 채 공격하지 않다가 방향을 틀어 포탄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결국 적군을 초토화시킨 이순신은 기세를 이어 부산포 해전에서도 승리를 이어갔다. 이 전투로 왜군은 전쟁을 포기하고 만다.
영화 <명량> 이후 8년 만에 김한민 감독이 선보이는 <한산: 용의 출현>은 명량해전이 일어나기 5년 전의 일을 그린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명량>의 이순신은 풍채가 좋은 최민식이 맡았으나, 이번 작품에선 박해일이 이순신 역을 맡았다. 더 젊고, 마른 체형이다.
달라진 건 이순신의 외모만이 아니다. <명량>은 실제 바다 위에 배를 띄워서 촬영했지만, 그사이 기술이 발전한 까닭에 이번엔 바다 위에 배를 띄우지 않고, 한 체육관을 세트장으로 만들어 해전(海戰)을 촬영했다.
심지어 왜군과 이순신이 이끄는 아군이 촬영장에서 만나는 일도 없었다는 게 1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변요한의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투를 보는 듯해 우리나라 컴퓨터 그래픽 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의 핵심은 거북선의 등장이다. 이에 대해 연출을 맡은 김한민 감독은 거북선에 대한 설은 많지만, 자료가 많지 않아 실제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돌격선이 어떤 걸로 생각했다며 고증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이어서 그는 국군 장병들이 이 영화를 보고 무한한 자긍심을 갖게 되면 좋겠다며, “국뽕(마약에 취하듯 애국심에 취하게 하는 것) 너머의 국뽕으로 봐 달라”고 주문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