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기에 어울리는 주제
애니메이션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의 내용은 간단하다.
엄마의 병을 고치기 위해 툰드라 소녀 그리샤가 ‘숲의 주인’인 붉은 곰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여기까지 듣고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설화 같은 ‘숲의 주인’ 타령인가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극 중 러시아 정부 역시 같은 생각을 갖고, 주민들이 믿고 있는 ‘숲의 주인’을 제거하기 위해 블라디미르크 대위를 파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고, 의지하면 눈에 보이는 정부의 힘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인공 그리샤의 아빠 역시,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붉은 곰’에 대한 이야기는 알지만 설마 진짜 그런 존재가 있겠느냐며 반신반의한다.
하지만, 아직은 순수한 사춘기 소녀 그리샤는 어떻게든 엄마를 낫게 하기 위해 붉은 곰을 찾아 떠난다.
그리샤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지만, 몇 번 붉은 곰을 봤기에 진짜 붉은 곰이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추위와 늑대의 추격 등 죽을 위기를 넘기며 드디어 ‘숲의 주인’으로 불리는 붉은 곰을 만난다.
심지어 그리샤는 붉은 곰의 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다.
엄마를 고치기 원하는 그리샤에게 붉은 곰은 자기에 대해 오해한 것 같다며, 자기는 이 땅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그동안 자기가 오랜 기간 살 수 있었던 건 치유의 힘을 가진 월귤나무 덕분이라며, 월귤나무 열매를 그리샤에게 건넨다.
여기서 등장하는 월귤나무는 ‘카우베리’, ‘마운틴 그린베리’, ‘베어베리’로 불리는 항산화와 해독 효과를 지닌 실존하는 나무이며, 붉은 곰은 24,000년 전 멸종한 ‘동굴곰’을 모티프로 했다.
아울러, 툰드라 족의 여러 생활상 역시 SBS 특집다큐 <최후의 툰드라> 제작진의 자문을 받아 실제와 흡사하게 구현하기 위해 애썼다.
뿐만 아니라 극 중 ‘그리샤’와 ‘꼴라’라는 이름 역시 다큐에 등장한 실제 형제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했다. 다만, 그리샤는 우리로 치면 ‘철수’ 같은 느낌의 이름이라 여자 이름으로 어울리지 않아, 해외수출 작품에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크리샤’로 표기하기로 했다.
이 작품은 스톱모션으로 제작됐다. 한 컷 한 컷을 촬영해 이어 붙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법인 까닭에 당연히 제작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참고로 이 작품은 한 컷당 8시간을 촬영했다.)
36명의 스태프가 28,440시간(3년 3개월)에 걸쳐 22개의 인형과 10개의 세트를 이용해 총 850컷을 만들어냈다.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한 시대에 왜 이런 방식으로 제작했는지 의아할 수도 있으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박재범 감독의 취향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는 45년 만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이 작품은 앞서 말한 것처럼 어쩌면 미개해 보일 수도 있는, 자연에 의존하는 삶을 보여준다.
왜 이런 주제를 택했느냐는 질문에 박 감독은 지난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도 그렇고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많은 것을 봐도 지금 시기에 어울리는 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의 말처럼 환경문제는 고리타분한 이야기 혹은 시대에 뒤쳐진 이야기가 아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스피커와 신이 존재하는지를 토론하고, 사람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컴퓨터와 바둑을 두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환경문제는 우리에게 중요한 주제다.
산업화로 인해 공해가 증가하고, 환경이 파괴되면, 북극곰은 물론 인간도 살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영화에선 지구로 오는 행성을 막아내지만, 해수면의 상승과 지구온난화는 영화에서처럼 멋있게 한 방에 막아낼 수 없다.
자연을 소중히 하며 살아가는 툰드라 사람들의 모습은 그래서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이라기보다 어쩌면 가장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의 제목인 ‘엄마의 땅’은 엄마가 소유한 땅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엄마이고, 그 품에 우리가 산다는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우리의 조국(motherland)을 의미한다.
애니메이션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오는 25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