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의 사정 잘 보여줘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 <현명한 심장>은 러브스토리이긴 한데, 정사 장면도 없고, 너무 순수한 사랑을 다뤄서 팔리지 않아, 1권만 사도 무려 3권을 더 주는 행사를 열지만 그래도 도통 사는 사람이 없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의 작가인 헨리는, 편집자로부터 멕시코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단 믿지 못할 소식을 듣고 북콘서트를 열기 위해 멕시코로 향한다.
하지만 그는 북콘서트 도중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알고 보니 자기 책을 번역한 마리아가 직역이 아닌 자기 멋대로 고쳐 19금 소설로 둔갑시켜 버린 것.
게다가 제목마저 <예민한 가슴>이라고 저급하게 바꿔 버렸다.
헨리는 순수한 사랑을 그린 자기 책이 19금 소설로 바뀐 걸 알고 마리아에게 화낸다.
하지만 북콘서트뿐만 아니라, TV 출연도 하고, 가는 곳마다 자기를 좋아하는 팬들을 보며 스타 작가의 삶을 즐긴다.
급기야 영국 편집자로부터 멕시코 번역본을 다시 영어로 번역해 영국에서 출간하겠다는 소식을 듣는다.
책에 대해 악평만 쏟아지던 영국과 달리, 호평이 쏟아지자 헨리는 마리아의 번역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 편집자로부터 마리아와 새 책을 써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그렇게 현실적인 사랑을 모르는 헨리와 소설가를 꿈꾸는 가운데 생계를 위해 술집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 엄마 마리아의 공동작업이 시작된다.
경험치가 다르니 둘의 생각도 다르고, 당연히 소설의 방향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둘이 함께 있을 때만 글을 쓴다는 원칙을 지키며 집필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카니발에 참가하고 돌아와 한껏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둘은 격정적인 밤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 들뜬 기분에 헨리가 혼자 소설을 이어가다 마리아의 남편에게 DM을 받고 마리아에게 배신감을 느껴 혼자 소설의 결말을 맺는다.
마리아는 헨리가 자기와 한 단 하나의 약속을 어기고 글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헨리와 결별한다.
어쨌든 두 사람이 쓴 소설이 출간되고, 이번에도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는다.
헨리는 북콘서트에서 마리아가 아니면 이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며, 사람들 앞에서 마리아에게 공을 돌린다.
마침 마리아가 현장에 온 걸 보고 그는 마리아에게 자기 마음을 고백하고, 이때 마리아의 남편이 행사장에 난입해 소란을 피운다.
영화 <북 오브 러브>는 소위 ‘예술하는’ 남자와 ‘팔릴 책’을 쓰는 여자의 모습을 통해 출판계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분명히 누군가는 팔리는 것과 무관하게 순수문학을 고수하는 이도 있어야겠지만, 책을 만들고 유통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니 팔릴 책을 써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야하고, 자극적인 사랑 이야기만 쓰면 전체적으로 소설 시장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 있으니 꼭 팔릴만한 자극적인 책만 만들 수도 없다.
올해 3월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책을 1권도 구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통 휴가철 대통령이 이번 휴가 때 읽을 책 목록을 공개하는데, 윤 대통령은 책을 구입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그만큼 출판 시장이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책을 읽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집에서 책을 읽기보단 밖으로 나가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책 판매량이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팔리지 않을 책만 주구장창 출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화 속에선 출판사가 순수문학이 아닌 ‘19금 소설’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문제다.
출판계의 고민을 잘 보여주는 영화 <북 오브 러브>는 오는 21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