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의 인간성으로 돌아갈 때
자기 작품을 쓰고 싶지만, 내주는 출판사가 없어서 대필작가로 근근이 먹고 사는 히사는 이혼한 아내의 양육비 재촉에 어쩔 수 없이 또 대필을 한다.
글의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던 그는 우연히 집에 있는 고등어 통조림을 보고 1986년 여름의 그 아이를 떠올린다.
같은 반 타케는 늘 러닝셔츠 차림으로 학교에 와서 책상에 물고기 그림만 그린다.
이에 친구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되고, 어느 날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집을 공개한 후 가난하단 이유로 더더욱 놀림 받는다.
여름방학이 되자 히사의 집으로 찾아온 타케는 돌고래를 보러 같이 자전거를 타고 부메랑섬에 가자고 꼬신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집으로 찾아온 타케와 몰래 집을 나서다가 히사의 아빠에게 걸리고, 아빠는 혼내기는커녕 오랫동안 타면 엉덩이 아프다며 자전거 안장을 손 봐 준다.
그렇게 둘은 돌고래를 보러 길을 떠나지만, 도중에 자전거도 고장나고, 동네 나쁜 형들을 만나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두 소년은 부메랑섬 근처에 다다르고, 헤엄쳐서 섬까지 이동한다.
거의 도달한 무렵, 갑자기 히사가 쥐가 나 위험에 처한다. 이때 아까 동네 불량배 형들에게서 구해 준 유카 누나가 나타나 또 아이들을 도와준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끝내 돌고래를 보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간다.
그리고 이번에 또 유카 누나를 만나고, 아이들은 유카에게 조개를 얻어먹는다.
그리고 저 멀리 있다는 한국에서부터 떠내려온 음료수 캔을 보며 언젠가 이 작은 마을을 벗어날 수 있을까 꿈을 꾸게 된다.
그렇게 즐거운 하루를 보낸 두 소년은 방학이 끝날 때까지 내내 붙어 다니고, 히사가 초밥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타케는 고등어 통조림으로 초밥을 만들어 준다.
히사가 초밥이 아주 맛있다며 나중에 꼭 초밥 요리사가 되라고 칭찬하자, 타케는 히사에게 너는 글을 잘 쓰니 나중에 꼭 작가가 되라고 응원한다.
그때 타케의 엄마가 집에 돌아오고, 히사에게 타케 친구냐며 반가워한다.
그랬더니 타케가 엄마에게 히사는 자기를 친구로 생각 안 할 수도 있는데,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느냐며 타박한다.
그동안 친구라고 생각한 히사는 타케의 반응에 서운해 하고, 얼마 후 퇴근하던 타케의 엄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고아가 된 타케의 5남매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 친척집으로 가고, 멀리 떠나는 타케에게 히사는 고등어 통조림을 건네며 우린 친구라며, 또 보자는 인사를 건넨다.
일본영화지만, 1980년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풍경과 소품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엄마와 동생 4명과 함께 살던 타케는 친구들이 자기 집을 보고 비웃을 때, 유일하게 아무런 반응을 안 하던 히사에게 마음을 연다.
하지만, 히사가 과연 나를 친구라고 생각할까 싶어 엄마가 히사에게 “타케 친구니?”라는 아주 일상적인 인사를 건네자 격한 반응을 보인다.
비록 히사가 가난하다며 놀리진 않았지만, 나처럼 가난한 아이를 친구라고 생각할까 자격지심에 말이다.
그러나 히사는 그런 타케의 태도에 더 실망한다. 친구니까 같이 새벽부터 자전거 타고 돌고래 보러 가기도 하고, 집에 와서 초밥도 해 먹는 건데 친구로 생각할지 모르겠다니, 그런 생각을 하는 타케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요즘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일반분양 받은 세대인지, 임대받은 세대인지에 따로 출입구를 따로 두고, 놀이터에서 노는 것도 제한을 두는 각박한 세상이 됐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말은 고리타분한 구호일 뿐, 아파트 단지에서도, 회사에서도 사람을 구분 짓는다.
예전 같으면 다 같은 우리 회사 직원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젠 계약직과 정규직, 파견직 등 여러 계층으로 구분해 너는 우리 회사 건물에서 일하지만, 우리 회사 직원은 아니라며 하다못해 명절 선물도 주지 않는다.
비록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못했을지 몰라도, 지금 우리는 1986년의 인간성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나 싶다.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은 내달 5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