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독립을 알리려 애쓴 손기정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 아니 ‘손 키테이’가 마라톤 우승을 거머쥐었다.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출전한 그는 월계수 화분으로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가리고 기념촬영을 했다.

이 일로 손기정은 국민 영웅으로 등극했으나, 일본은 그에게 영원히 마라톤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그리고 1945년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았으나, 38선을 기준으로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통치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려 했으나, ‘조선’이라는 나라는 한 번도 국제대회에 참가한 적이 없다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거부했다.

이에 방법을 찾다가 올림픽 전에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1947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로 한다.

하지만, ‘조선’은 미군정 통치를 받는 ‘난민국’이라 재정보증금 900만 원(당시 집 한 채 값)과 미국에 거주하는 재정보증인도 있어야 한다는 통보를 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베를린올림픽 이후 한 번도 국제적인 마라톤대회가 열리지 않아, 여전히 손기정이 올림픽 신기록 보유자이지만, 미국 정부는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고 난민이니 재정보증금을 내야 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손기정은 자신이 발굴한 신예 서윤복을 내세워 출정식을 연다.

하지만, 미국 정부에서 보증금을 제때 내지 못했으니 아예 입국을 허가할 수 없다고 통보하자, 그는 수많은 군중과 언론인 앞에서 도움을 호소한다.

국민 영웅 손기정의 호소에 사람들이 꼭 서윤복과 손기정 감독을 미국으로 보내자며 모금에 동참해 결국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

베를린올림픽 당시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 곤욕을 치른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가 소개해 준 재미(在美) 사업가 백남용(극 중 백남현)이 재정보증인 겸 현지 코디네이터를 맡아 이들을 돕는다.

대회를 며칠 앞두고 서윤복이 받아 든 유니폼에 태극기가 아닌 성조기가 그려져 있자, 손기정은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하려고 온 것인데 또다시 남의 나라 이름으로 출전해야 한다면, 곧바로 돌아가겠다고 맞선다.

미국 육상연맹 회장은 성조기를 달고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면 미국 시민권도 얻을 수 있다며 회유한다.

이에 손기정은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는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며 열변을 토한다.

그의 말에 기자들이 동조하자, 결국 미국 육상연맹은 서윤복에게 태극기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고 뛰어도 좋다고 허락한다.

영화 <1947 보스턴>은 ‘제2의 손기정’으로 불리는 서윤복이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한 일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다시 한번 ‘국뽕’이 차오르는 작품을 내놓았다.

그는 1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실존 인물을 그리려고 했지만, ‘마초 같은’ 손기정의 모습을 통해 서윤복에게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보이길 원했다고 말했다.

또 손기정 역을 맡은 하정우가 많은 아이디어를 줬다며, ‘달리는 자’와 그를 애타게 바라보는 자의 모습을 담을 수 있어서 만족할만한 장면이 나왔다고 말했다.

영화의 백미인 보스턴마라톤대회 장면을 위해 서윤복 역을 맡은 임시완은 체지방을 6%까지 줄이는 노력을 했다고.

이에 하정우는 이런 임시완의 노력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대회 장면을 찍을 때 진심으로 응원하게 됐다며 찬사를 보냈다.

또, 백남현 역을 맡은 김상호는 실존 인물인 백남용을 희화화하려는 의도는 없다며, 행여라도 누가 되는 장면이 있다면 그건 모두 자기 탓이라며 본인이 맡은 역할에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일제로부터 해방은 됐으나, 여전히 미군정의 통치를 받던 시기 ‘조선’이란 이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손기정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1947 보스턴>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