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을 알고 봐도 감동이 밀려와
다큐멘터리 영화 <크레센도>에는 요즘 클래식계 떠오르는 샛별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비롯해서 이른바 ‘클래식 올림픽’으로 불리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한 이들의 모습을 그렸다.
지난해 콩쿠르에선 총 322명이 참가해 그중 30명>18명>12명>6명으로 추려 최종 3명에게 금·은·동메달이 수여됐다.
대회를 앞두고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이지, 누구와 경쟁하러 온 게 아니라며, 우승 여부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세계적 권위의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이들은 이미 정상급의 연주자이기에 이런 말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20대 젊은 청춘답게 평소엔 호기심도 많고, 장난도 잘 치는 모습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31살의 주부 안나(러시아)는 첫째 톰에 이어 뱃속에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참가했다고 한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텐데, 둘째가 태어나면 이름을 ‘제리’로 지으면 집에 ‘톰과 제리’가 있게 된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밝은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참가가 꼭 주부이거나 임신 중이서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작년 3월, 예심 오디션을 위해 러시아 피아니스트 15명이 미국 텍사스에 도착하자, 얼마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서 세계 각국의 체육행사와 문화행사에서 러시아의 참가를 막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이 콩쿠르 역시 러시아의 참가를 막아야 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주최 측은 음악으로 화합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 모두 참여시키기로 결정했다.
30명의 예선 참가자 모두 똑같은 지정곡을 연주해야 하는데, 이 콩쿠르에서 초연(初演)되는 곡이라 기준이 없어서 힘든 까닭에 다들 뒷순서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반대로 앞사람이 잘하면 뒷사람이 부담되니 꼭 나중에 연주하는 게 유리한 것도 아니다.
그런 가운데 맨 마지막 순서로 한국에서 온 만 18세의 임윤찬이 무대에 올랐고, 그는 당당히 18명의 준준결선 진출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들 몇 시간 후에 열릴 대회를 위해 연습을 하겠다고 하지만, 심사위원이 오히려 긴장을 풀기 위해 산책을 권하자 임윤찬을 비롯한 몇 몇은 산책도 하고, 놀이공원에 가기도 한다.
그렇게 12명을 가려내기 위한 준준결선이 시작되고, 임윤찬은 <환상 소나타>를 연주한다.
여기서 박진형, 임윤찬, 김홍기, 신창용 등 한국인 4명이 준결선 무대에 진출한다.
준결선은 앞으로 다양한 무대에서 공연하게 될 참가자들을 위해 다른 공연장에서 치른다.
이를 통해 연주자들이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도 평가하려는 것.
1등 하려고 참가한 게 아니라 스스로를 검증하기 위해 참가했다는 임윤찬은 리스트의 <12개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연주한다.
이번에도 당연히 임윤찬의 이름이 호명된다. 그렇게 러시아에서 온 안나를 비롯한 6명이 결선에 진출한다.
결선에 오른 이들은 이번엔 독주(獨奏)가 아닌 오케스트라와 2곡을 협연해야 하는데, 이를 통해 서로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는지 평가하기 위함이다.
임윤찬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D단조 작품 30>을 결선에서 연주한다.
이 곡은 냉전시기인 1958년 당시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국제콩쿠르>에서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연주해 우승을 한 곡이다.
냉전시기에 소련 땅에서 미국인이 음악으로 하나되게 한 걸 기념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만들어지게 됐다.
이 콩쿠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곡인 까닭에 임윤찬뿐 아니라 2명이나 더 같은 곡을 연주한다.
임윤찬의 연주가 끝난 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잊지 못할 연주였다면서 인사를 건넨다.
그만큼 그의 연주가 훌륭했다는 걸 모두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그대로 수상으로 이어졌고, 금메달은 한국에서 온 18세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은메달은 러시아에서 온 주부 안나가 동메달은 우크라이나에서 온 드미트리 초니가 수상했다.
이들은 국적이나 나이를 초월해 무대 위에서 하나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크레센도>의 결말은 사실 스포일러일 것도 아닐 정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천재 피아니스트의 탄생으로 우리 언론에서 이미 여러 차례 소개해 기사 첫 문장에서 임윤찬이라는 이름과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라는 대회명만 듣고도 결말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말을 알고 보더라도 점점 차오르는 ‘국뽕’에 감동이 밀려온다.
외국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한국인의 애국심이 차오른다는 것이 재미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평소 우리가 보기 힘든 피아니스트의 일상적인 모습은 물론, 콩쿠르에 임하는 이들의 마음가짐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크레센도>는 오는 20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