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다 그런 거지
과거엔 추석이면 온 가족이 성룡 주연의 영화를 보던 시절이 있었지만, 가족이 모두 모이는 명절에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가 더 어울리는 게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이번 추석 연휴 직전에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 여러 편이 개봉을 준비 중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보면 좋을 영화 3편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영화 <그녀에게>
사회적으로 소위 끗발 날리던 국회출입기자 상연(김재화 분)은 모든 걸 계획대로 살아간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싶다던 그녀는 이란성 쌍둥이를 낳는다.
첫째를 낳고 30분 넘게 아이가 안 나와 고생하지만, 제왕절개가 아닌 자연분만으로 둘째도 낳는다.
꼭 그래서만은 아닐 텐데, 둘째가 자폐성 장애라는 진단을 받자, 모든 게 무너져 내린다. 그때 생각난 사람이 과거 대학시절 학보사 선배 한 명도 장애아를 키우고 있다는 게 떠올라 무작정 전화를 걸어 울기부터 한다.
그때 선배가 “네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하자 큰 힘이 됐다. 선배의 조언대로 자기 인생까지 포기한 채 아이에게 모든 걸 쏟아붓지만, 그럴수록 점점 지쳐간다.
학교에서 아이가 부당한 일을 겪자 아는 기자들 총동원해 이슈화를 하려 하지만, 꿈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난 후 접는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 날 후배 기자에게 전화를 받는다. 자기 애도 장애인인데, 어떻게 해야 좋겠냐는 말에 상연은 자기 방식대로 조언을 한다.
이 영화는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을 쓴 류승연 기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강남 8학군 출신에, 국회출입기자를 지낸 그녀는 40대에 정치부장, 50대에 편집국장을 꿈꿨지만, 장애아동의 엄마가 된 후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됐다.
이에 대해 이상철 감독은 지난 2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에세이를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각색이 됐지만, 고증이나 디테일한 부분은 류 기자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고 말했다.
또 상연이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고, 상연의 후배가 또 상연에게 조언을 구하는 장면은 실제 원작 에세이에 나온 이야기라며, 선배는 상연에게 아이의 치료에 집중하라고 조언하지만, 상연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며 이를 통해 상연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BLESSER이다. 영어로는 축복하는 사람이지만, 불어로는 아프게 하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다.
축복과 상처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처럼, 장애인 가족을 뒀다는 게 서로 다르게 다가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뜻하지 않게 장애인 가족이 되어 당황하거나 상실감을 느끼는 이에게 추천할 만하다. 9월 11일 개봉.
영화 <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트라비아타>
그런가 하면 여기 가족을 잃은 한 여인이 있다. 바쁘게 사느라 아들을 보살필 여력이 안 돼 피아노학원에 보냈는데, 애가 소질이 있다는 말에 기뻤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아 남편과 불화를 겪었다.
이를 지켜보던 아들이 집을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은 아이가 바다에 휩쓸려 떠내려간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 죽어서 아들을 만나면 무식한 엄마가 되기 싫은 영희(김지영 분)는 얼마 전 작고한 성악가 엄마의 집 정리를 위해 제주에 내려온 준우(배수빈 분)에게 클래식에 대해 배운다.
드라마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을 연출한 멜로 장인 윤석호 감독이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영화다.
윤 감독은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류열풍으로 드라마 제작비가 상승했고, 그러다보니 상업성이 강조돼 본인이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드는 게 힘들어져 영화를 만들게 됐다며, 잠시 쉬어가는 이런 류의 영화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가족을 위해서라며, 늘 바쁘게 살아 정작 가족을 챙기지 못하는 대다수 현대인에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라는 대사가 큰 울림을 준다. 9월 11일 개봉.
영화 <장손>
지금도 저런 집이 있을까 싶지만, 실내온도 32도에도 에어컨 안 켜고 제사 음식을 준비하다가, 장손(강승호 분)이 오자마자 에어컨을 켜는 할머니(손숙 분)의 장손 사랑에 여성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탄식을 내뱉게 하는 영화다.
할아버지는 툭하면 아빠에게 빨갱이 운운하고, 장손인 성진은 계속 배우 생활을 하겠다며 가업인 두부공장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했다가 욕을 먹는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동안 할머니가 관리하던 곗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게다가 큰고모는 매달 100만 원씩 할머니에게 맡겼다는데 갑자기 이러는 고모의 태도에 가족들 사이에 분란이 생긴다.
오정민 감독은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가족의 비밀이 드러났는데 대한민국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영화화했다고 한다.
연기인생 61년차 손숙 전 장관이 할머니 역을 맡아 우리네 할머니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라고 하지만, 여전히 가족 내에서 남녀차별을 겪고 있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9월 11일 개봉.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