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처럼 가장한 사회 비판 영화
나치의 학살을 피해 아내와 조카를 두고 미국으로 건너온 건축가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 분)는 사촌인 아틸라(알레산드로 니볼라 분)와 함께 어느 부잣집의 서재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 돌아온 집주인 밴 뷰런(가이 피어스 분)은 마당에서 흑인 노동자가 일하고 있고, 집안은 난장판이 된 꼴을 보고 깜짝 놀란다.
토스가 아드님이 서프라이즈 선물로 서재 리모델링을 의뢰했다고 설명해도, 당장 나가라며 내쫓는다.
그러더니 아틸라에게 따로 연락해 집 훼손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라며, 공사비는 한 푼도 못 주겠다고 윽박지른다.
먼저 미국에 이민 왔다는 이유로 선의로 토스에게 숙식도 제공하고, 일도 같이 했는데, 일이 엎어지자 짜증이 난 아틸라가 토스를 쫒아낸다.
갈 곳이 없는 토스는 같이 밴의 집을 공사했던 흑인 노동자 고든(이삭 드 번콜 분)과 함께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한 노숙자 쉼터에서 지내면서 막노동을 한다.
그렇게 몇 년이나 지났을까? 어느 날 밴 뷰런이 토스를 찾아온다.
토스가 짓다가 만 자기 집 서재가 유명 건축잡지에 실렸다며, 대체 뭐하던 사람인지 묻는다.
토스는 바우하우스(나치에 의해 폐교되기 전까지 14년간 운영된 미술, 공예, 사진, 건축전문학교; 편집자 주) 출신 건축가였는데, 그가 좋아하는 건축양식을 나치가 금지해서 더 이상 일할 수가 없어 필라델피아에 왔다고 말한다.
밴은 그때 순순히 쫓겨나지 말고, 자기 자랑 좀 제대로 하지 그랬느냐며 그때 안 준 공사비를 준다.
모처럼 큰돈이 생긴 김에 토스는 다시 마약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밴이 사람을 보내 토스를 자기 집으로 데려온다. 그는 손님들 앞에서 이 사람의 건축물이 유명 건축잡지에 많이 소개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손님 중 한 명이자 미국 부통령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로펌에 근무 중인 마이클에게 토스의 아내와 조카를 미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한다.
이것도 감사한데 갑자기 밴이 토스와 손님들을 죄다 끌고 언덕에 올라 여기에 얼마 전 타계한 자기 엄마의 이름을 딴 주민 커뮤니티센터를 지으려는데, 토스가 이 일을 맡아주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미국에 건너와 힘들게 살던 토스는 밴의 저택에 기거하면서 큰 프로젝트를 맡게 돼 경제적으로 숨통이 트인다.
밴의 아들 해리(조 알윈 분)가 시장과 협의해 기독교 예배당을 짓는 조건으로 건축비 지원을 받아온다.
그 바람에 여러 건물을 지어야 되게 된 토스는 고민하지만, 곧 해답을 찾아 주민설명회를 개최한다.
그렇게 공사가 시작되지만, 밴이 그동안 일을 맡겼던 레슬리(조너선 하이드 분)가 감리랍시고 건축물의 예술성을 무시한 채, 공사비에만 초점을 둬 토스의 설계를 변경한다.
게다가 운송비 절감을 위해 구입한 기차가 자재 운송 도중 사고가 나 2명이 다치자, 밴은 그 2명 중 1명이라도 죽으면 골치 아파진다며 공사를 중단시킨다.
이미 아내 에르제벳(펄리시티 존스 분)과 조카 조피아(아리안 라베드 분)까지 온 마당에 토스는 갑자기 실직자 신세가 된다.
세월이 흘러 사고보상금으로 일을 마무리한 밴이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토스에게 다시 돌아와 건축을 마무리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영화의 제목인 ‘브루탈리스트’는 콘크리트 노출 건축양식인 브루탈리즘(brutalism)으로 건축하는 건축가를 뜻한다.
15분의 인터미션을 포함해 총 3시간 34분 51초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보통 긴 뮤지컬이 20분의 인터미션을 포함해 총 3시간 정도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긴 편이다.
1시간 40분 34초부터 시작되는 인터미션 시간에는 15분의 카운트다운이 진행되면서, 토스의 결혼식 사진과 함께 경음악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아직 영화가 끝난 건 아니기에 상영관의 불이 켜지진 않는다. 특히 휴식시간이 끝나가는 걸 관객들이 인지할 수 있게 종료 2분 전부터는 음악 대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영화의 러닝타임도, 인터미션 형식도 관객들에겐 새로운 경험이다.
영화 속 밴은 성공한 사업가로, 하층민의 삶을 사는 토스에게 호의를 베푸는 듯하면서 무시와 경멸로 일관한다.
옥스퍼드대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조국인 헝가리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는 토스의 아내에게, 토스의 영어 발음이 구두닦이 발음 같으니 당신이 발음교정 좀 해 주라며, 토스에게 동전 한 닢을 던진다.
그리고 사고로 중단됐던 공사를 재개한 후에 레슬리가 데려온 업자와 토스가 자꾸 마찰을 빚자, 그 자리에서 업자를 해고하는 척하면서, 뒤에선 그에게 전화로 감리를 진행시킨다.
또 자재를 구하기 위해 이탈리아 석공을 만나고 난 후, 술에 취한 토스를 밴이 강간한다. 넌 나에겐 아무런 힘이 없는 존재라는 걸 각인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자 탄압을 본격화하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다.
트럼프의 모습과 극 중 밴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그런 까닭에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오는 12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