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녀 피해서 해외로 도주?
1918년 1월 4일 버마 랑군. 영국 공무원인 에드워드는 7년 전에 마지막으로 본 약혼녀 몰리의 얼굴도 이제 거의 기억 나지 않지만, 몰리의 사촌오빠와 만나 함께 차를 마시곤 한다.
어느 날 몰리의 사촌오빠와 차를 마시는데 그에게 전보가 온다. 에드워드는 갑자기 이곳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탄다.
그러나 도중에 기차가 탈선해 다음 기차를 기다린다.
그는 약혼녀를 피해 기차와 배를 이용해 멀리 도망간다. 사이공에 도착한 에드워드는 또 전보를 받는다.
체력이 안 좋아진 그는 몇 주간 회복한 후, 이번에는 마닐라로 간다. 사이공에서 뜸을 떠서인지 이제 컨디션도 아주 좋다. 그래서 술과 향락을 실컷 즐긴다.
일본으로 간 그는 식당에서 군인들이 여권을 제시하라고 하자 도망치고, 승려들과 어울려 한 탁발(托鉢) 하면서 절로 이동한다.
한 중년 여인이 여자 때문에 밀입국했다는 에드워드에게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라며, 다음날 당장 상하이로 가라고 한다.
상하이에 도착한 그는 1시간이 채 안 돼 약혼녀로부터 또 보고싶다는 전보를 받는다.
이제야 에드워드는 몰리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그녀가 오기 전에 또다시 길을 떠난다.
영화 <그랜드 투어>는 약혼녀가 보고싶다며 찾아오려 하자 급히 도망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는 감독의 본인의 결혼식 전날 읽은 서머셋 몸의<응접실의 신사>라는 여행에 관한 책에 실린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약혼녀를 피해 도망간 버마 주재 영국인이 이른바 그랜드 투어(20세기 초 대영제국 시절 인도의 도시에서 시작하여 극동(중국 또는 일본)에서 끝나는 아시아 그랜드 투어는 가장 수요가 많았던 여행)를 떠났다가, 약혼녀에게 붙잡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준 후, 다시 여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굳이 따지자면,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 것인데, 이런 이해 없이 영화를 보면 여자가 늘 한 발 늦는 것처럼 보일 뿐 아니라,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남자에게 전보를 보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을 꼽자면, 배경이 1918년이지만, 현재의 자동차가 등장하고, 핸드폰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감독은 이 영화가 진짜 1918년에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 픽션임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는데, 관객 입장에서 몰입감이 깨지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장면이 흑백으로 처리됐는데 이는 스튜디오 촬영분이고, 나라가 바뀔 때 등장하는 거리의 풍경은 컬러로 처리하는데 1918년이 아닌 2025년 현재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영화라는 게 본디 허구의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는데(물론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지만), 굳이 허구의 이야기를 강조하려고 시대에 맞지 않는 소품을 등장시켜 “영화는 영화일뿐”이라고 주지시키는 것이 과연 필요했을까 싶다.
오히려 이런 점이 관객에게 ‘옥에 티’로 작용해, 영화에 빠져들지 못하게 방해한다는 걸 간과한 듯하다.
영화 <그랜드 투어>는 오는 26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