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로영화 같은 소재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
2014년 개봉한 영화 <숙희>는 인간의 성적 욕망과 환자를 대하는 태도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다.
신부(神父)가 되려다 실수로 여자와 잠자리를 해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된 윤인호 교수(조한철 분)는 결혼 후 부인과의 잠자리도 피할 정도로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
하다못해 수업태도가 불량한 졸업반 여학생에게 F학점을 주겠다고 경고하자, 여학생이 ‘몸 로비’를 하려하자 더 단호하게 그 여학생을 밀쳐낼 정도다.
그러던 그가 수업과 출판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다 쓰러지게 되고,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숙희(채민서 분)가 간병을 맡게 된다.
오직 정신과 이성을 우위에 두었던 윤 교수는 자신이 그렇게 터부시했던 육체가 마비되고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혼란에 빠진다.
자신의 나신(裸身)을 아무렇지 않게 씻기는 것은 기본이고, 아무 스스럼없이 자기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숙희에 반감을 가진 윤 교수는 그녀의 간병을 거부한다.
숙희는 자신이 돌보니까 자기 애라며 윤 교수를 아이 취급하고, 마치 자신이 엄마인 듯 대한다.
숙희는 윤 교수에게 자신을 엄마처럼 생각하라고 말하면서도 성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며 모성과 섹슈얼리티의 경계를 오간다.
간병을 통해 환자들에게 엄마처럼 행동하며 군림하는 숙희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남편에게 꼼짝없이 순종하며 육체를 제공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화려하게 치장하는데 관심이 많은 소녀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날 윤 교수의 동의도 없이 그를 데리고 그가 강의하던 대학으로 끌고 간 숙희.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들킨 윤 교수는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흘린다.
숙희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간병한 탓에 다시 강단에 서게 된 윤 교수는 이전의 금욕적인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마음껏 분출한다.
이후 숙희를 만난 윤 교수는 자신이 환자였던 시절, 숙희가 먼저 자신에게 성적으로 서슴없이 행동했던 때를 떠올리며 그녀를 겁탈하려 하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부한다.
이는 설령 여성이 먼저 유혹한 적이 있더라도, 언제라도 남성이 겁탈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최근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여성의 옷차림이나 평소 행실에 문제가 있었다는 식의 변명을 가해자인 남성들이 하는데 설령 여성이 짧은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거나, 혹은 평소 야한 농담을 자주 했다고 해서 심지어는 해당 남성과 몇 번의 잠자리를 자발적으로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남성의 ‘요구’에 언제나 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다소 내용이 에로영화처럼 보일 수 있으나, 엄연히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본선 진출작으로 이 영화를 연출한 양지은 감독은 50대 여성이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