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통해 세계인 만날 ‘허스토리’에 제동
이번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도 상영 기회를 얻으며, 세계인들에게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문제를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된 영화 <허스토리>에 대해 반론이 제기됐다.
일본 내에서 활동 중인 ‘전후 책임을 묻고・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회원들은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허스토리>가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우리는 이번에 이 영화를 보고 경악했고, 분노와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며, “피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좋다는 식의 상업주의에 감독이 사로잡혀, 피해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작업은 하지 않고 제작한 것은 아닌가 싶고, 감독의 불성실함과 태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절대로 픽션화해서는 안 되는, 진실이라는 것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바로, 원고인 피해자가 목숨을 걸고 법정에서 호소한 피해사실”이라며 “이 영화는, 재판의 진실을 전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원고들의 바람과 명예에 또 한 번 상처를 입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고들의 바람과 지원모임의 바람이 무시되고 왜곡되고 있다며, 이들은 “관부재판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려 하지는 않았던 영화 <허스토리> 제작자들에게 통렬한 반성을 요구”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全文).
영화 <허스토리>의 제작자에게 항의한다.
우리는 후쿠오카에 살고 있는 ‘전후 책임을 묻고・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회원들입니다.
이 영화는 관부재판을 소재로 한 실화에 바탕한 영화라고 선전했는데, 변호사도 지원모임도 취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원고들조차 취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이 영화를 보고 경악했고, 분노와 슬픔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원고들의 바람과 지원모임의 바람이 무시되고 왜곡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부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측이 함께 원고로서 임했던 재판입니다. 열 분의 원고 중 일곱 분이 근로정신대피해자입니다.
그 분들은 자신들의 피해가 한국사회에서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 환경 속에서 고독하게 투쟁해야 했습니다.
정신대가 곧 ‘위안부’라는 한국사회의 기존 인식 속에서 가족들과 지역사회의 편견의 눈초리를 받으며 싸워 왔고, 이제 겨우 그런 차이와 근로정신대의 피해실태가 인식되게 된 시점에서 그간의 편견을 증폭시키는 듯한 스토리를 만들어 근로정신대의 실태를 관부재판에서 지워 버린 것은 범죄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겠습니다.
더구나, ‘위안부’ 원고들의 피해실태에 관해서도 증언기록이 존재하는데 왜 이 재판과는 관계가 없는 몇몇 피해자들의 경험을 짜깁기 해서 과다하게 각색한 걸까요.
이러한 제작자세로 보건대, 피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좋다는 식의 상업주의에 감독이 사로잡혀, 피해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작업은 하지 않고 제작한 것은 아닌가 싶고, 감독의 불성실함과 태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최고재판소(대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며 시모노세키판결을 내렸던 재판관들의 성의와 용기에 대한 헤아림도 전혀 없어 보입니다.
절대로 픽션화해서는 안 되는, 진실이라는 것이 세상에는 존재합니다. 바로, 원고인 피해자가 목숨을 걸고 법정에서 호소한 ‘피해사실’입니다.
영화 속에서, 후지코시에 근로정신대로 동원되어 위안부가 된 것으로 설정된 분은, 이 재판 원고였던 박SO할머니입니다.
이분은 98년 당시 시모노세키판결얘기가 한국에 보도되면서, 지역사회와 교회 시람들로부터 ‘위안부였던 거네’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창피하니까 재판은 하지 말아요!’라는 말로 가족들이 애원하는 정황 속에서 분노와 슬픔으로 인해 가벼운 뇌경색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훗날 치매 증상을 보이게 된 것은 이때 일이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기도 합니다.
박SO 할머니는 물론 ‘위안부’가 되지 않았고, 이 분을 정신대에 보낸 것으로 설정된 스기야마선생님은 국민학교 4학년 때 담임교사였으며 박할머니께서 많이 존경하고 사랑해 온 분입니다.
실제로 정신대로 보낸 교사는 6학년 때 담임, 그러니까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스기야마 선생님과의 후쿠오카에서의 감동적이었던 상봉장면을 완전히 다른 스토리—픽션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만약 박SO할머니가 살아계셔서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분노하고 상처받으셨을까요. 스기야마선생님은 황민화 교육에 관계했던 자신을 깊이 후회하고, 한일간 진정한 우호를 위한 활동에 일생을 바쳐 오신 분입니다.
아직 생존 중이신 스기야마 선생님이 이 영화를 우연히라도 만나는 일이 없기를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판이 시작된 이후로, 우리는 원고분들께 지원모임회원들의 집 혹은 교회에서 숙박하실 수 있도록 해 드렸습니다. 그곳에서 재판관련 회의를 했고 할머니들과 함께 식사를 했으며, 노래도 불렀고 춤도 추었습니다.
친해지면서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고민을 토로하실 때도 있었고, 그러면서 우리는 피해자들이 입은 깊은 상처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은, 원고들과 지원자들간의 상호신뢰와 사랑과 존경심이 깊어지면서 자신을 바꿔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원고들이 여관에서 숙박한 것으로 묘사된 부분과 그곳에서 발생한 일 전부가, 감독의 황당무계한 공상일 뿐입니다.
지원모임이 바랐던 것은, 원고 피해자들과 함께 하며 함께 싸우는 일, 그리고 일본사회에 그녀들의 피해를 알리면서 일본정부를 향해 해결을 촉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일본국내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제작하는 모임’ 등의 역사수정주의자들과 싸우면서 전쟁피해 진상규명 법을 국회에서 성립시키기 위한 활동도 했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배상법을 만들 수 있도록 우리 지역인 후쿠오카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하기 위한 선거전등의 활동도, 부족하나마 해 왔습니다.
재판을 통해 만들어진 원고들과의 소중한 인연이, 우리모임의 역량을 넘는 싸움에까지 우리를 나서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원고들과 지원자들의 그런 교류와 운동은 전혀 묘사하지 않았고, 당시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우익들의 조롱이나 시민들의 차가운 태도를 여기저기 끼워 넣어 일본사회에 대한 반감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재판의 진실을 전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원고들의 바람과 명예에 또 한 번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
관부재판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려 하지는 않았던 영화 <허스토리> 제작자들에게 통렬한 반성을 요구합니다!
2018년 10월 2일
전후 책임을 묻고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