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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에 따라 무죄도 유죄도 될 수 있다

영화 배심원들 스틸컷

사례1. 어려서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그런데 그 사내의 엄마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추락해 죽었다. 베란다엔 사내도 같이 있었다. 그 사내의 딸은 둘 사이가 참 좋았다며, 아빠가 할머니를 죽였을리 없다고 말하지만 소녀 역시 머리카락을 요란하게 염색했다.

사례2. 화상으로 인해 얼굴은 흉하고, 양손은 의수(義手)를 착용하지만 늘 노모를 생각하는 효심 깊은 아들. 식당에서 일하는 노모가 몇 달째 월급을 못 받아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노모가 수입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도 될 수 없단다. 방법은 둘이 가족의 연을 끊는 것이지만 차마 그럴 수 없다. 미용사가 되려는 딸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사실 앞의 두 사례는 모두 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다. 혹시 여러분은 두 사례를 접하고, 노모(老母)를 아들이 살해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1번째 사례만 들었으면 당연히 아들이 어머니를 죽였을 것이라고,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폐륜아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반면, 2번째 사례만 들었다면 그 착한 아들이 왜 늙은 엄마를 죽였겠냐고 생각할 것이다.

15일 개봉한 영화 <배심원들>은 2008년 처음으로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영화로, 실제 있었던 재판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영화에서 대부분의 배심원들과 판사(문소리 분)는 본인의 자백도 있고, 과거 전과 등을 비춰볼 때 의심의 여지없이 아들(윤경호 분)이 엄마(이용이 분)를 죽였을 것이라고 확신한다.(재판 과정에서 피의자는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형량만 결정하려던 재판은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으로 바뀐다.)

반면, 6번 배심원 장기백(김홍파 분)는 노모의 둔부에 난 상처가 아들이 망치로 내리쳐서가 아니라 추락과정에서 다른데 부딪혀 생긴 상처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만약 그 주장이 맞다면 아들은 무죄다.

하지만 재판장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그를 퇴정(退廷) 시킨다. 30년 동안 시신을 다뤄 온 그가 법의학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배심원 평결을 앞두고 모두가 유죄라고 의견을 낼 때, 여러 이유로 아들이 죽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8번 배심원 권남우(박형식 분)는 선뜻 의견을 밝히지 못하고 주저한다.

하루가 거의 지나가는데 대충 딱 봐도 아들이 죽인 것 같은데 얼른 집에 갈 생각은 안 하고 뭐하나 싶어 남우에게 얼른 의견을 밝히던지 아니면 기권 처리하겠다고 압박한다.

결국 사건기록 열람과 현장검증까지 마친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을 제시한다.

하지만, 법률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배심원들이 뭘 알겠냐는 생각을 가진 판사는 25년형을 구형하기로 마음먹는다.

드디어 판결을 앞둔 마지막 순간. 김준겸 판사는 정확하지 않을 때는 피의자 이익의 편에서 생각하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상기한다.

그리고 배심원들의 주장처럼 꼭 아들이 죽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정황을 참작해 무죄를 선고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법을 가지고 필요에 따라 ‘협상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일단은 모든 피의자가 무죄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오판으로 법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하는 대원칙은 무시하기 일쑤다.

영화 속에서 김준겸 판사 역을 맡은 문소리는 극중 대사를 통해 법은 처벌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원칙 없이 처벌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법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참 의미 있는 대사다.

사법농단과 재판거래가 판치는 대한민국의 법조계에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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