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알면 권력 독점이 깨진다
최근 표절 논란과 주연 배우의 죽음으로 여러 논란에 휩싸인 영화 <나랏말싸미>가 15일 기자시사회를 개최했다.
영화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신미’라는 중이 함께 창제과정에 참여했다는 여러 가지 ‘설’ 중 하나를 기본으로 제작됐다.
이는 감독이 과거 해인사 테마파크를 방문했을 때 ‘대장경 로드’를 보고 산스크리트어 등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다가 영감을 얻어 신미가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다는 설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박해일이 맡은 ‘신미’는 이른바 소리글자인 산스크리트어 등에 능통해 세종대왕이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들은 우선 우리말의 자음과 모음이 어떠한 것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그 과정에서 산스크리트어 등 여러 소리글자로 적는다.
그런 다음에 그것들의 모양을 만들기 위해 발음을 할 때 사람의 입모양을 본떠 ㄱ,ㄴ,ㄷ 등 자음을 만들었다.
또 획을 최소화 해 ‘점’으로만 모음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던 차에 한계를 느껴 점 외에 ‘선’도 결합해 지금의 모음을 만드는 모습이 그려진다.
수백 년 동안 우리가 매일 사용 중인 한글의 모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사실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어 신기할 것은 없으나, 한글 반포 당시 책의 이름이 ‘훈민정음’이 된 사연과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만들었다고 알고 있었으나 승려들이 한글창제에 함께 했다는 사실 등은 흥미로운 부분임이 틀림없다.
또 한글을 만든 이유가 백성들이 글을 알아 자신의 생각도 표현하고, 지식도 전하게 하려 함이었다는 점은 시사(示唆) 하는 바가 크다.
과거 천주교의 성경은 헬라어로 되어 있어 이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신부(神父) 뿐이었다. 이는 곧 신부의 권력으로 이어졌다.
성경의 내용을 알아야 구원을 받던 할 텐데, 남들이 쓰지도 않는 고어(古語)인 헬라어로 적힌 성경 앞에선 신자들이 ‘까막눈’이다 보니 그것을 읽어주고, 해석해 주는 신부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조선에서도 같은 일은 일어났다. 그 어려운 천자문을 읽고, 쓰지 못하는 대부분의 백성들은 연애편지를 쓸 수도, 부처나 공자의 가르침을 직접 책을 읽음으로써 배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보니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양반들만이 지식을 독점했고, 관직을 꿰차고, 자신들의 힘을 휘두를 수 있었다.
만약 백성들이 양반처럼 자기 이름도 쓰고, 팔만대장경도 읽고, 시도 지을 수 있다면 더 이상 글을 안다는 이유로 권력을 잡던 양반들에겐 큰 위협이 될 것이 뻔했다.
이에 영화에서는 소위 권력을 지닌 왕의 신하들이 극렬히 새로운 문자 만드는 것에 반대한 것으로 나온다.
때문에 세종대왕은 어쩔 수 없이 ‘비밀리에’ 신미 일행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사뭇 결이 다른 한글 창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또 다른 축은 바로 억불(抑佛) 정책이다. 영화는 승려 신미가 훈민정음 창제과정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당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던 사회 분위기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때문에 단순히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다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보는 관객에겐 다소 기대했던 것과 다른 내용에 당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의 애민(愛民) 정신이 잘 담긴 영화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故 전미선의 유작(遺作)이 된 <나랏말싸미>는 고인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이날 기자시사회를 제외한 어떠한 행사로도 관객과 만나거나, 영화를 홍보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이달 24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