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속성 잘 보여주는 코믹 사극
처음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하는 광대패를 이용해 왕(세조)에 대한 좋은 소문을 만들어 낸다는 콘셉트만 들었을 때는 조선시대판 ‘킹크랩’ 같은 것인 줄 알고 말 된다고 생각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공연하는 광대들이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 왕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지난 13일 기자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광대들: 풍문조작단>은 현대의 ‘킹크랩’이라기 보다는 행사기획자인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관의 역할과 비슷했다.
덕호(조진웅 분)가 이끄는 광대패는 무엇이든 연출 가능한 만능 재주꾼이 모여 있다. <육신의 충>이라는 책의 내용을 토대로 임금과 한명회 등을 비판해 오던 이들은, 우연히 한명회에게 왕의 이미지를 좋게 풍문을 조작해 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사실 임금인 세조(박희순 분) 보다 더 실세인 한명회(손현주 분)의 말을 거역하긴 쉽지 않을 터. 결국 알겠다고 답한 이들은 임금이 행차하는 길에 쓰러진 소나무가 벌떡 일어나 임금이 길을 지나가도록 연출한다.
당연히 이런 기이한 일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퍼져 나가기 마련. 며칠 만에 전국에 소문이 퍼지면서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됐다는 이유로 정통성이 약하던 세조에 대해 백성들은 하늘이 점 찍은 임금이 아니냐는 인식을 갖게 한다.
제법 쓸 만한 재주꾼이라고 판단한 한명회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왕을 위해 일해 달라고 제안하고, 덕호 일당은 결국 또 수락한다.
자유로운 영혼이어서 하기 싫으면 차라리 죽고 만다던 이들은 정작 한명회가 한양으로 데려가 집도 주고, 천민 신분에서도 해방시켜주니 세조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일한다.
이들은 세조가 행차할 때마다 백성들로부터 주목을 끌 만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매번 멋지게 성공시킨다.
이 과정에서 부처의 모습으로 변신한 김슬기의 모습 등을 통해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결국 왕으로부터도 인정받은 이들은 작은 벼슬도 하나씩 받게 된다.
이 영화는 지금 봐도 신기한 조선시대의 각종 특수효과 등을 관객에게 보여줘 눈길을 끄는데, 이는 당시 역사적 사실만 기록한 실록에 나온 40여가지 기이한 일(예컨대 엄청 큰 불상이 하늘 높이 떠 올랐다 거나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는 등의 이야기) 중 3가지를 추려서 영화에서 보여준다.
아마 실록에 기록된 그 기이한 일은 이런 식으로 구현한 게 아닐까 하는 감독의 상상력이 보태진 이른바 ‘팩션’ 사극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눈 여겨 볼 점은 다른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세조 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동안 우리가 알던 한명회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한명회를 만날 수 있다.
참고로 한명회 역을 맡은 손현주는 귀 분장에만 꼬박 2시간이 걸린 탓에 힘들어서 며칠씩이고 그냥 그대로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눈요기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돈맛을 보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평소 자신들이 비판하던 대상으로부터 집도 제공 받고, 천민 신분도 벗어나고, 나중에 관직까지 받게 되자 그들은 충성을 한다.
심지어 처음에는 천민 신분만 벗어나게 해 줘도 더 바랄 것이 없다더니 나중엔 먼저 관직을 달라, 돈을 달라고 뻔뻔하게 요구한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습성 때문에 간혹 현직 언론인이 퇴사 직후에 곧바로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부처의 대변인으로 직행하는 것에 대해 언론이 비판하는 것이다.
어제까진 감시자로서 자신이 기사를 통해 비판하던 부처에 대변인으로 가서는 바로 180도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누군가는 임금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이도 있어야 임금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제대로 국정을 이끌어 나갈 텐데, 그들의 하는 말이 듣기 싫다고 돈과 관직을 주면서 임금을 위해 일하라고 회유하는 모습은 비단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터이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정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은 오는 21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