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실수’ 피해자에겐 평생의 상처
각자 사별하고 외로움에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만나게 된 노년의 베티(헬렌 미렌 분)와 로이(이안 맥켈런 분).
술을 안 마신다던 베티는 첫 만남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안 핀다던 로이는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프로필을 작성하면서 담배를 피워 댄다.
이쯤 되면 사별(死別) 했다는 말도 거짓말인 것을 관객들은 직감하게 된다.
어쨌든 비슷한 또래의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로이가 불편한 다리로 높은 아파트를 걸어 올라가는 걸 본 베티는 그냥 자기 집에서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아무리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더라도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영감과 동거를 하겠다는 할머니를 보면서 손자 스티븐(러셀 토비 분)이 펄쩍 뛴다.
그러나 로이에게 푹 빠진 베티는 동거를 감행한다.
하지만 로이에겐 한 가지 비밀이 있었으니, ‘할아버지 사기단’의 일원으로 다리가 불편한 척 하면서 베티의 환심을 산 것도 전부 거짓말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베티에게서 ‘돈 냄새’를 맡게 된 로이는 본격적으로 그녀에게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 작전을 짠다.
그동안 만지던 ‘고작 1억5천만원’ 정도가 아니라 ‘최소 8억원’은 만질 수 있겠다 싶어서이다.
베티의 자산이 동산과 부동산을 합쳐 총 42억원에 달한다는 걸 파악하게 된 그는 그녀의 전 재산을 빼앗기 위해 회계사로 위장한 자신의 동료 빈센트(짐 카터 분)를 내세워 공동 계좌를 만들어 각자의 재산 전부를 한 군데로 모은다.
세계적 명문대학인 옥스퍼드대 교수 출신이라는 베티가 너무나 순진하게 잘 속아줘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있지도 않은 아들 핑계를 대고 집을 나온 로이는 공동계좌에서 돈을 찾으려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다시 베티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베티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고, 관객들은 이 대목에서 비로소 이 영화의 제목인 ‘굿 라이어'(good liar)가 로이가 아닌 베티를 지칭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탄탄한 스토리와 반전의 결말은 관객들이 한 순간도 한 눈을 팔지 못하도록 잡아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대학로 연극처럼 보는 내내 웃음이 팡팡 터지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2009년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과거 나치의 잘못은 물론 어린 소년의 그릇된 성 인식, 동성애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담고 있다.
베티 역은 영화 <더 퀸>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헬렌 미렌이 맡았고, 로이 역은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이안 맥켈런이 맡았다.
여기에 영화 <미녀와 야수>의 감독이자 <위대한 쇼맨>의 각본가인 빌 콘돈이 메가폰을 잡아 명배우와 명감독의 조화로 색다른 스릴러 영화를 탄생시켰다.
영화는 가해자에겐 욱 하는 충동적인 행위였을지 몰라도, 피해자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피해자는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벼르고 있었다는 걸 통해 단순히 가해자 입장에서 ‘장난’이나 ‘순간의 실수’로 치부해 버리는 일들이 피해자에겐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 <굿 라이어>는 다음 달 5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