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사고를 하는 이에게 권하는 영화
아버지의 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소식에 5남매는 큰아버지 댁으로 가기로 한다. 하지만, 정작 해당 문자를 보낸 장남이자 막내인 승락(곽민규 분)은 당일 날 연락이 두절된 채 나타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4명의 누나만 큰아버지 댁에 가지만, 가부장적인 큰아버지(유순웅 분)는 장남도 없이 무슨 이장(移葬)이냐며 당장 막내 승락을 찾아오라며 다시 돌려보낸다.
10년째 대학에 다니는 넷째 혜연(윤금선아 분)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들 타령만 하는 큰아버지가 꼴도 보기 싫어 한바탕 한다.
그녀는 급기야 다시 막내 동생을 찾으러 돌아가던 길에 열이 뻗쳐서 언니와도 한판 한 후 무턱대고 차에서 내려 버린다.
도통 연락이 되지 않는 문제의 장남을 어디에 가서 잡아와야 하나 고민하던 누나들은 결국 승락의 SNS를 뒤져서 ‘페친’들에게 혹시 승락이의 소재를 알면 좀 알려 달라는 메시지를 뿌린다.
그리고 드디어 승락의 전 여자 친구라는 한 여성(송희준 분)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이에 그 여성을 앞세워 승락의 집에 쳐들어가지만, 정작 승락은 누나들이 아닌 전 여자 친구 때문에 집에 없는 척 하면서 숨을 죽인다.
분명히 집에 있는 게 분명한데 자꾸 없는 척하는 그의 모습에 분노 게이지가 한계에 달한 큰누나(장리우 분)는 창문을 깨 버린다.
결국 승락의 집에 들어가게 된 누나들과 여자 친구. 이 자리에서 그가 왜 집에 없는 척 했는지 이유가 밝혀진다.
바로 여자 친구와 피임도 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맺다가 임신을 시켜버린 것.
이에 대학에서 페미니즘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넷째 누나 혜연은 자신의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쥐 잡듯이 승락을 두들겨 팬다.
어쨌든 다시 이들은 큰아버지 댁으로 향한다.
드디어 ‘고추 달린’ 장남을 마주하게 된 큰아버지는 마냥 기뻐하고, 승락이의 여자 친구라며 따라 온 윤화가 임신한 걸 눈치 챈 큰어머니(강선숙 분)는 승락이가 무슨 ‘남자 구실’을 제대로 했다는 것 마냥 기뻐한다.
드디어 ‘장남’이 왔으니 큰아버지는 동생의 묘 이장 이야기를 꺼낸다. 승락은 미리 큰아버지께 받은 코치대로 아버지 유언이 매장이었는데, 굳이 이장 하면서 화장(火葬)을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큰아버지와 싸워서 화장으로 이미 다 이야기를 끝마친 누나들은, 어렵게 잡아온 아들이라는 놈이 엉뚱한 소리를 하니 속이 터진다.
꼭 ‘묻어야만’ 된다는 큰아버지에게 승락의 누나들은 수목장도 묻는 것이니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큰어머니는 큰아버지에게 자식들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두라며 우리 자식들도 아닌데 웬 참견이냐며 중재에 나선다.
영화 <이장>은 정성오 감독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어릴 때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차별 당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며, 이에 본인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나리오에 녹여냈다고 한다.
특히 아내가 5남매라 그들 남매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본인의 바람을 많이 반영했다고 한다.
남매가 한 차를 타고 시골로 향한다는 설정은 영화 <니나 내나>와 닮았다. 아무래도 좁은 차 안에서 함께 촬영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배우들이 자연스레 진짜 가족처럼 친해졌다고 한다.
다만 좁은 차 안에서의 장면이 지루하지 않게 서로 티격태격 하는 과정에서 자리 배치를 달리 하는 등 신경을 썼다.
남자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지만, ‘여성 서사’가 잘 녹아져 있다. 이에 대해 정 감독은 처음부터 그런 의대를 가지고 쓴 것은 아니라며, 여성들이 가족 내에서 차별 받는 것을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서 반영했다고 말했다.
비록 호주제는 폐지됐어도 여전히 제사나 유산 상속 등에서 여성들이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또 영화 속에서 승락은 여자 친구와 성관계를 맺으면서 피임을 하지 않아 결국 임신시키고 마는데, 감독은 넷째 누나의 입을 빌려 이는 성폭력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아직까지도 많은 남성들이 피임은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하는 장면이기에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여자는 아들을 낳아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큰아버지의 모습 역시 큰어머니와 승락의 누나들의 입을 빌려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이 영화는 “세기말적 가부장제에 작별을 고한다”는 카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성이 대통령도 하고, 육사 수석입학도 하는 시대에 여전히 장남만이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낡은 사고를 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강력 추천한다.
영화 <이장>은 다음 달 5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