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위에 사람 없다
반드시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의 반응과 대중의 반응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영화 보는 게 일인 사람들은 워낙에 많은 영화를 보다 보니 대중에 비해 평가가 냉정한 편이다.
특히 일반 사람들은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보게 되면 자기 돈 안 들이고 공짜로 봤으니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대부분 후한 평가를 주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직업상 매일 같이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보는 기자나 평론가들은 ‘돈’이 아니라 ‘시간’을 측정 기준으로 삼는다.
소중한 내 시간을 투자해 영화를 보러 특정 극장까지 왔는데, 영화가 진짜로 재미가 없으면 이건 ‘시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주제 의식이 뚜렷한 것도 아닌 영화는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시사회 후 이어지는 기자간담회에서 딱히 던질 질문도 없다.
대부분 이런 영화는 대중들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채 금방 극장에서 사라진다.
11일 언론에 공개된 김인권 주연의 ‘코미디 영화’ <열혈형사>가 바로 이런 영화 중에 하나다.
윤여창 감독은 코미디 영화가 (다른 대작 영화들에) 밀려나는 상황 속에서 다국적 캐스팅으로 반전을 노렸다며 이 영화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 까닭에 몽골 배우도 캐스팅 하고, 몽골 울란바트로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한 것이라는 게 감독의 말이다.
하지만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배우 김승현과 하주희의 말처럼 이 영화가 개봉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정도로 재미없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몽골 출신 모델(천이슬 분)이 실종되자 몽골인 동료 모델(하주희 분)을 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몽골에서 경찰(얀츠카 분)이 한국에 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으로, 설정 자체는 현빈 주연의 영화 <공조>와 닮았다.
하지만 스토리도 엉성하고, 액션 연기도 2% 부족하다.
영화 시작할 때 나오는 타이틀이나 영화의 편집은 지금은 사라진 ‘비디오 테이프’ 영화를 보는 듯하다.
수준이 딱 30년 전인 1990년대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보던 그런 류의 영화 수준이다.
차라리 영화의 콘셉트를 그렇게 잡은 것이라면 천재적인 편집이라고 극찬을 하겠지만, 딱히 콘셉트를 그렇게 잡은 것도 아니니 대체 왜 이런 감독에게 메가폰을 쥐어줬는지 모를 일이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몽골 배우도 캐스팅 하고, 몽골에서 촬영도 했다는데 과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차라리 시나리오만 감독이 쓰고, 다른 감독에게 연출을 맡겼더라면 이 정도는 아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한 가지 눈 여겨 볼 점이 있다면, 부자들의 갑질은 한국이나 몽골이나 똑같구나 하는 점이다.
같이 한국에서 모델 활동을 하는 알리샤(하주희 분)는 자기와 함께 온 토야체(천이슬 분)를 노예처럼 취급한다. 단지 토야체의 엄마가 갑부인 알리샤의 아빠 집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우리는 이미 뉴스를 통해 ‘대한항공 갑질’ 등 재벌들이 얼마나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지 익히 잘 알고 있다.
부자가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기업의 물건을 소비해 줌으로써 자기가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 회장이라고 해도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지속하면 그의 축적된 부(富)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소위 말하는 ‘건물주’ 역시 세입자가 없다면 부를 축적할 수 없다.
때문에 부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겸손해야 한다. 늘 누군가의 덕으로 자신이 이렇게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부자들은 그 점은 잊은 채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심지어 이 영화에서처럼 죽이기도 서슴치 않는다.
죄를 지어도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거나 아니면 아예 담당 검사나 판사를 자신의 기업으로 스카우트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큰 기업도 언젠가 하루아침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다. 과거 국제그룹이 그랬고, 대우그룹도 그리고 서울은행, 조흥은행 등 많은 대기업들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게 됐다.
자신이 가진 게 많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치면 안 된다.
아들 대신 복수하겠다며 몽둥이를 들고 상대방을 두들겨 팬 회장이나 미수금을 달라고 찾아온 화물기사에 돈 줄 테니까 천만 원에 1대씩 맞자며 두들겨 팬 회장이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 봐라.
현역 대통령을 뒤에서 조정하며 많은 부를 축적한 집안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온 국민이 알고 있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억지로라도 의미를 찾자면,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걸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열혈형사>는 오는 18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