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가족 영화
가족들 모두 뉴욕에 사는 탓에 중국에 사는 할머니(자오 슈젠 분)와 매일 수시로 국제전화로 안부를 전하는 빌리(아콰피나 분).
그 비싼 국제전화를 수시로 할 정도이니 빌리와 할머니의 서로에 대한 애정은 그 누구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빌리의 가족들이 빌리의 사촌동생 하오하오의 결혼식을 위해 할머니가 있는 중국에 다녀온단다. 대신, 빌리는 그냥 미국에 있으면 좋겠다며 결혼식에 참석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빌리에게 부모는 사실은 할머니가 폐암 4기라 3달 정도 밖에 못 사는데, 할머니께는 이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을 거여서 할머니 얼굴 볼 핑계로 사촌동생의 ‘가짜 결혼식’을 기획했다고 말한다.
할머니라면 끔찍한 빌리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다. 그녀의 아빠(티지 마 분)는 어차피 할머니가 치료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그냥 마음 편히 살다가 가도록 하자고 하지만, 빌리는 마지막 작별(farewell) 인사라도 할 수 있게 할머니한테 본인의 상태를 얘기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 충돌한다.
이에 빌리의 엄마(다이애나 린 분)는 네가 이럴 것 같아서 같이 안 데리고 가는 것이니 그냥 조용히 집에 있으라고 말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제 할머니 얼굴 볼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나만 못 볼 수는 없지 싶어 그녀는 가족들 몰래 따로 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갑자기 나타난 빌리의 등장에 친척들과 가족은 제가 기어이 할머니한테 얘기하러 왔구나 싶어 긴장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는 바빠서 못 온다고 들었는데 네가 와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며 그녀를 반긴다.
25년 전 6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빌리는 할머니 집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가 4번이나 바뀔 때까지 와 본 적이 없어 할머니와의 재회가 정말로 좋다.
할머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하나 같이 빌리를 무슨 시한폭탄 보듯이 조마조마해 하는 걸 아는 빌리는 할머니에게 당신의 상태를 알려주고는 싶지만 할머니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갑자기 초상집 분위기 만들기 싫어서 참는다.
빌리의 할머니는 일본에 사는 손자가 고향에 돌아와 결혼을 한다는데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느냐며 아예 마을잔치를 성대하게 열자고 하고, 가족들은 ‘가짜 결혼식’인데 너무 일이 커진 것 같아 말도 못하고 괴로워한다.
룰루 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영화 <페어웰>은 선덴스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미국 배급사 간 경쟁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극장 개봉을 원했던 감독은 거액을 제시한 넷플릭스의 유혹을 물리치고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배급한 A24와 계약해 화제를 모았다.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에서 <기생충>을 제치고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하나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바로 ‘빌리’다. 빌리 역을 맡은 아콰피나는 한국인 엄마와 중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극중 빌리처럼 뉴욕에 살고 있다.
4살 때부터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그녀는 빌리 역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경험과 생생한 기억을 녹여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영화이기에 감독은 영화가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이길 원해 할머니의 동생 즉, 빌리의 이모할머니 역에 진짜 자신의 이모할머니인 홍 루를 캐스팅했다.
극중 이모할머니 역시 큰 병에 걸렸지만, 언니(빌리의 할머니)가 걱정할까봐 ‘양성음영’이라는 양성이라는 건지, 음성이라는 건지 알아듣지 못할 괴상한 말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영화에까지 출연할 정도로 건강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노인에게 가족들이 총동원 돼 거짓말을 한다는 설정이 감우성, 신구 주연의 영화 <간 큰 가족>을 떠 올리게 하지만, <간 큰 가족>은 허구의 코미디 영화이고 <페어웰>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 드라마라는 점이 차이점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게 솔직히 자신의 상태를 알려주는 게 좋은 일인지, 사는 날 동안이라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이야기 안 하는 게 좋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 <페어웰>은 다음 달 4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