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아닌 여성의 삶에 대해 봐주길
실존인물인 고생물학자 메리 애닝을 소재로 한 영화 <암모나이트>가 지난 5일 기자시사회를 개최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840년대 영국 남부의 해변마을이다. 11살에 바다 도마뱀 화석을 발견했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빛을 보지 못한 메리(케이트 윈슬렛 분)는 노모(젬마 존스 분)와 함께 ‘애닝의 화석가게’를 운영 중이다.
그는 바닷가에서 주운 암모나이트를 가공해 기념품을 팔면서 먹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런던 지리학회에서 메리의 명성을 들었다며 로더릭(제임스 맥아들 분)이 아내 샬럿(시얼샤 로넌 분)과 함께 찾아온다.
그는 메리에게 비용은 충분히 지불할 테니까 4주 길어도 5주만 자신의 아내와 함께 지내며 같이 암모나이트 채취할 때 데리고 다녀 달려고 부탁한다.
취미로 암모나이트를 채취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생업인데 참 성가신 부탁이긴 하나 돈을 많이 준다니 메리는 일단 알겠다고 한다.
남편이 떠난 후 샬럿은 하루 종일 자기 방에서 통 나오지도 않는다.
사실 샬럿은 밝은 성격의 여성이었으나, 얼마 전 유산을 한 후 삶의 의욕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해도 여성의 삶이라는 게 좋은 남편 만나 결혼해서 애 낳고, 살림하는 것이 전부인데 아이를 못 낳았으니 삶이 무너지는 것 같은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메리의 입장에서는 샬럿이 자기 부인도 아니고, 동성(同性)이기도 하니 그가 유산을 했든지 아이를 낳든지 크게 상관없어 그냥 샬럿이라는 한 인격체로 대해준다.
그래서였을까? 샬럿은 점점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 주는 메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메리 역시 여자라는 이유로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한 채 인적도 드는 바닷가에서 노모와 단 둘이 살아가는 자신 앞에 한참 어린 매력적인 여성이 나타나 자신을 좋아해주니 오랜만에 설레는 감정을 느낀다.
결국 두 사람은 당시 금기시 되던 동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런 가운데 샬럿은 남편으로부터 이제 집으로 오라는 편지를 받게 되고, 이에 메리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 진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날 ‘뜨거운 밤’을 보낸다.
샬럿이 떠난 얼마 후, 샬럿의 엄마가 갑자기 죽게 되고 소식을 들은 샬럿이 메리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상당히 먼 거리를 이동해 귀족인 샬럿의 저택에 도착한다. 샬럿은 메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그녀에게 따로 방을 준비해 뒀으니 이곳에서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집도 넓지, 하녀도 있지, 샬럿의 말대로 이 집에서는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메리는 자신은 새장 속의 새가 되기 싫다며 샬럿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 영화는 얼핏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로 보일 수 있으나, 핵심은 ‘여성의 삶’에 있다.
샬럿은 귀부인인 까닭에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를 유산해 ‘여성의 본분’을 다하지 못해 우울해 한다.
집에선 말 그대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누구 눈치를 봐야하진 않지만 그래봤자 그녀의 존재 이유는 결혼해서 아이 낳고, 아이를 훌륭히 키우는 것이다.
메리의 경우, 어린 나이에 바다 도마뱀 화석을 발견하는 대단한 업적을 세웠으나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매일 암모나이트를 캐내 가공하며 지낸다.
심지어 그녀는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다 도마뱀 화석을 팔 수 밖에 없었고, 그 화석은 ‘익티오사우루스’(공룡의 몸 구조를 가진 물고기 도마뱀)라는 이름으로 영국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여성의 연대를 꿈꾼 케이트 윈슬렛은 실제로 화석을 발굴하고, 가공하는 법을 배워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연기했다.
영화 <타이타닉>으로 세계적 배우 반열에 오른 그녀이지만, 이 작품을 위해 자신과 정반대되는 성격을 연기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노출 연기도 서슴치 않을 정도로 이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녀는 보도자료를 통해 “26년째 연기를 하고 있는데, 내 연기 인생에서 이만큼 캐릭터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적이 없다”며 “여성은 늘 평가받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는 매우 짜증나는 일이고, 그래서 역사적으로 위대한 족적을 남긴 여성들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화 <암모나이트>는 오는 11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