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가 던진 화두
조선시대 연산군 시대 광대의 삶을 그린 <왕의 남자>와 사도세자를 다룬 <사도>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의 삶을 조명한 <동주>에 이어 이준익 감독이 이번엔 조선시대 학자 정약전의 이야기를 그린 <자산어보>로 다시 한 번 인물에 초점을 맞춘 사극에 도전한다.
조선시대 어류도감인 「자산어보」 서문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스크린에 옮겼다. 1801년 순조 1년에 일어난 천주교도 박해사건인 신유박해 사건이나 정약용, 정약전 형제에 대한 이야기 등은 모두 역사적 사실에 기반 했다.
하지만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다. 엄밀히 말하면 이 영화는 ‘팩션’(fact와 fiction의 합성어) 사극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흑산도로 유배를 온 정약전(설경구 분)은 천주교도라는 이유로 딱히 그를 반겨주는 이도 없다. 이때 마을에 혼자 사는 여인 가거 댁(이정은 분)이 얼떨결에 그를 떠맡게 된다.
평생 학자로서의 삶만 살던 정약전의 눈에는 처음 보는 물고기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때 어릴 때부터 어부로 지내 ‘물고기 박사’인 창대(변요한 분)를 만나게 된다.
그는 창대에게 물고기에 대해 알려줄 수 있냐며 묻지만, 천주교를 믿어 유배 온 ‘서학죄인’인 그와 어울리는 게 영 불편한 창대는 약전을 피한다.
이에 약전은 창대가 비록 신분은 미천하나 글공부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자신이 글을 알려 줄 테니까, 자신에게 물고기에 대해 알려달라며 서로 지식을 맞교환 하자고 제안한다.
‘맞교환’은 돕는 게 아니니 그건 괜찮은 것 같아 창대는 약전의 제안을 수락한다.
사실 약전이 이렇게 물고기에 대해 관심을 보인 이유는 유배 상태에서도 「목민심서」 등 200여 권의 책을 집필한 동생 약용(류승룡 분)과 달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없는 ‘어류 도감’을 집필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
이에 그는 창대와 함께 각각의 물고기의 특징을 세세히 기록한 「흑산어보」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정약전을 스승으로 삼은 창대는 행여 흑(黑)이라는 글자 때문에 약전의 삶에 먹구름이 낄까 싶어 책의 이름을 ‘자산어보(玆山魚譜)’로 하면 어떻겠냐고 해 흑(黑)과 같은 의미를 지녔으나 덜 음침한 어감의 자(玆)로 바꿔 책 이름을 「자산어보」로 정한다.
한편 약전에게 글을 배운 창대는 이제는 제대로 사람구실을 하고 싶다며 약전의 곁을 떠나 과거시험을 치러 진사(進士)가 된다.
그는 정약용의 저서 「목민심서」에 나온 대로 행해 훌륭한 공직자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정작 현실은 그럴 수 없는 걸 깨닫고 좌절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영화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지난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커다란 사건이나 전쟁이 아닌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근대성(近代性)을 이야기 하려고 했다”며 “실존인물을 다룬 탓에 함부로 이야기(시나리오)를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영화 <동주>에 이어 또 다시 흑백영화로 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동주>는 요절한 젊은이를 다뤄서 어둠을 드러내기 위해 흑백영화로 찍었지만, 이번 <자산어보>는 밝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흑(黑) 보다 백(白)을 더 많이 사용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 영화는 흑백영화이지만 톤 자체가 밝은 까닭에 어두운 느낌이 덜하다. 또 몇 몇 장면은 아주 적은 분량으로 칼라(COLOR)를 사용해 희망적 느낌을 극대화 한다.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탄압을 당하다 결국 유배지에서 숨을 거둔 정약전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자산어보>는 오는 31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