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상은 괴짜 아닌 천재
솔직히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 유준상이 아닌 감독 유준상의 영화 <아직 안 끝났어>를 봤을 때만 해도 단순히 한풀이 정도로만 알았다. 많은 배우들이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자신이 직접 메가폰을 잡기도 하는 걸 봐서 그냥 가볍게 여겼다.
하지만 3년 만에 선보이는 그의 3번째 장편영화 <스프링 송>은 꽤나 재미있는 영화다. 전작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지만, 이번 작품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2016년 <내가 너에게 배우는 것들>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초청받은 걸 시작으로 전주국제영화를 거처 부산국제영화제까지 매번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으니 다음 작품은 해외영화제에 초청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이준화와 ‘J n Joy 20’이라는 팀을 꾸려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유준상이 어느 날,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일본에 가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곡이 나온 것도 아닌데, 무턱대고 뮤직비디오부터 찍겠다고 일본까지 간 그는 친분이 있는 배우들을 불러 모은다.
현장에 도착한 김소진에게 무턱대고 연기를 요구한다. 뭘 찍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않으니 소진은 화가 난다.
우연히 알게 된 일본 배우 아키노리 나카가와가 촬영 도중 스케줄 때문에 가야한다고 하자 갑자기 후배 정순원에게 전화해 일본으로 오라고 한다.
도착한 순원에게 역할을 설명하면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그 무엇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거야 원 ‘공기 반, 소리 반’보다 더 어려운 주문이다.
유준상은 그런 식으로 배우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을 주구장창 찍어댄다. 준비된 대사도 없는지 배우들에겐 과거 그들이 공연 때 했던 대사를 해 보라고 주문한다.
소진은 <만추> 때 했던 중국어 대사를 읊고, 소진의 상대역인 순원은 한국어 대사로 받아친다.
물론 두 사람의 대사는 서로 일맥상통 하지도 하고, 분위기에 어울리지도 않고 그냥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체 이렇게 해서 뮤직비디오가 될까 싶은 건 일본에 끌려 온 배우들뿐만 아니라 관객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음악(music)도 없이 화면(video)부터 찍어댄 뮤직 비디오(music video)는 영화 후반 멋있는 한 편의 작품이 된다.
이 정도면 유준상이 괴짜가 아니라, 천재가 아닐까 싶다.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준상은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가족들이 이제는 말리지 않고 계속 하라고 응원해 준다”고 답했는데, 이번 영화 정도면 충분히 응원 받을만 하다.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과정은 재미있고, 실제로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는 제법 멋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준상은 배우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찍었다고 한다.
장소 헌팅도 다 했고, 곡도 만들어 둔 상태였으나 배우들에겐 이런 얘기를 하지 않고 찍었다고 한다. 정순원에겐 극중에서처럼 대뜸 전화해서 “요즘 뭐하냐? 일본 가 봤냐?” 정도만 묻고 “일본으로 오라”고 했다고 한다.
후지산을 보여준다고 해서 정순원이 도착했더니 요 며칠 동안 멀리서도 잘 보이던 후지산이 흐려진 날씨탓에 안 보이자 그 자리에서 “그런데 후지산이 어디 있어요?”라고 대사를 바꿨다.
또 불꽃놀이 장면을 찍고 싶어서 내일 불꽃놀이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가서 기다리다가 찍었고, 기차가 등장하는 장면을 위해서는 승객이 적어서 기차가 잘 정차하지 않는 역에서 기차가 오길 기다렸다가 얼른 찍고 빠지는 등 극중에서 뿐 아니라, 실제 촬영 과정도 극중 설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후문.
이런 그의 촬영 스타일에 대해 유준상의 첫 작품부터 계속 같이 함께하고 있는 이준화는 (기타리스트인 까닭에) 다른 촬영현장은 경험해 보지 않아서 비교대상이 없긴 하지만,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고 따라준 배우들 덕분에 꽤나 완성도 있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코로나19 시국에 봄을 노래함으로써 희망을 주는 영화 <스프링 송>은 오는 21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