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성, 도지사에 출마하다
최근 ‘0선 중진의원’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 국민의힘 대표에 출마하면서 20·30대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2017년 프랑스에서는 만 39세인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되며 세계 최연소 대통령이 되었는데,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만 25세 이상 출마 가능한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등과 달리 대통령 후보는 만 40세 이상이 되어야 가능해 제도적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나올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 중 20대는 2명, 30대는 11명인데 이중 20대 2명은 모두 비례대표이고, 30대 11명 중 5명은 비례대표이고 6명은 지역구 의원이다.
또 남성은 243명, 여성은 57명으로, 여성 의원 중 절반인 28명은 비례대표다. 이렇게 따지면 20·30대 그리고 여성이 지역에 출마해 당선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동안 여당 및 제1야당 최고위원,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여러 차례 지낸 이준석 후보의 경우에도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때문에 ‘중진의원급’의 인지도를 지녔으나 한 번도 당선된 적은 없어 ‘0선 중진의원’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이 아닌 17명에 불과한 시·도지사 당선자의 면모를 살펴보면 여성과 청년에게 얼마나 벽이 높은지 보여준다.
3년 전 치러진 제7대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시·도지사 17명 중 남성이 17명이고, 여성은 단 1명도 없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50대가 7명, 60대 9명, 7대가 1명이다.
정당별로 보면 더불어민주당 14명, 자유한국당 2명, 무소속 1명이다.
이런 정치 현실 속에 만 32세 여성이 과감하게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게다가 소속 정당도 국민적 인지도가 매우 낮은 녹색당이라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해 전 제주도로 이사한 고은영 씨는 녹색당 후보로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의 선거 준비과정을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꼼꼼히 카메라로 기록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청춘선거>로 탄생했다.
30대 여성이, 게다가 4·3사건으로 외지인에 대해 반감이 큰 제주에서 서울 출신이 도지사 후보로 나선다는 것은 쉬운 도전이 아니다.
명함을 건네는 그녀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 “서울”이라고 답하자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여기까지 왔느냐고 대놓고 쓴소리를 하기도 하고, “너무 어린 것 아니냐?”며 무시하기도 일쑤다.
오히려 제주에서 나고 자란 도의원 비례대표 오수경 후보나 김기호 후보는 길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이 먼저 아무개의 자식이라고 알아보기도 하고, 본적(本籍)이 어딘지까지 알고 있을 정도인데 ‘육지에서 온 젊은 여성’인 고은영 후보는 주민들의 호감을 사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캠프 사람들은 모두 하나 되어 어떻게든 고 후보를 띄우기에 나선다.
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은영 후보는 예비후보를 거쳐 정식후보 등록을 마친 후부터는 종일 강행군을 펼쳐야 하는 후보의 체력을 위해 늦은 밤 열리는 선거 대책 회의는 캠프 사람들끼리 하고, 후보는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배려해 줬다고 말했다.
고 후보 역시 선거캠프 사람들을 믿고 모든 걸 맡겼다고 한다. 덕분에 고 후보와 당 지지도는 날이 갈수록 점점 올라간다.
20대 때부터 창당에 관심이 있었다는 윤경미 제주녹색당 사무처장은 자기 일처럼 고 후보를 돕는다. 그는 당 지지율이 오르는 것이 고 후보 덕분이니 가급적 녹색당을 부각하기보다 고은영 후보를 부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어떻게든 고 후보를 띄워보려고 애쓴다.
현실적으로 도의원 비례대표는 정당지지율 5%만 얻어도 당선이 가능하지만, 도지사는 5% 득표만으로 당선되기 힘들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당 지지율을 높여 도의원 1명이라도 당선시키는 게 더 현실성 높겠지만, 윤 처장은 오히려 고은영 띄우기에 중점을 둔다.
그는 이번 선거 이후 고 후보가 당을 떠날 수도 있으나, 만약 다음에 또 다시 출마한다면 그때도 기꺼이 돕겠다고 말한다.
물론 선거 결과는 누구나 알듯이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51.72%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래도 녹색당과 고은영 후보에겐 의미 있는 선거였다. 외지인, 30대, 여성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고 후보는 득표율 3.53%로 자유한국당 김방훈 후보(3.26%)와 바른미래당 장성철 후보(1.45%)를 누르고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
인지도가 낮은 군소 진보정당 후보가 인지도 높은 기성 정당 후보를 앞섰다는 것은 분명 눈여겨볼 일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고은영 후보가 현재 녹색당을 떠났다는 점이다. 고 후보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현재 녹색당을 탈당한 상태라며, 사회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30대 여성으로는 특별한 경험을 한 그녀가 계속 당에 남아 당과 새로운 정치를 위해 애써줬으면 언젠가 제주도민들도 그녀의 진정성을 알아줄 날이 왔을 텐데, 선거에서 한 번 졌다고 탈당해 버린 것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스스로 끊은 것이나 다름없어 아쉽다.
특히 앞서 말했듯 제주 사람들은 제주 4·3사건으로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다. 때문에 혈연이나 지연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는 ‘괸당’ 문화로 이어진다. 오죽하면 “이 당 저 당보다 괸당이 최고”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제2공항 건설 백지화 등을 주장하며 출마한 고 후보가 선거 패배 후 탈당해 버려 제주 사람들에게 ‘믿을 수 없는 외지인’으로 찍히게 됐다.
굳이 이 영화의 의미를 찾자면, 마치 선거캠프 영상팀처럼 선거 준비과정을 가감 없이 모두 카메라에 담아 선거를 준비하는 청춘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준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청춘선거>는 오는 17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