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라는 이유로…
기자의 고교 동창 한 명은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중국으로 유학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오자 못 보던 남동생이 한 명 생겼다. 외동딸이 유학 가자 적적했는지 부모님이 늦둥이를 낳았다.
스무 살 차이나는 남동생은 기자의 친구에게 다른 이들의 동생보다 더 부담스러운 존재로 다가왔다.
대게의 경우 부모님이 친구보다 일찍 세상을 떠날 텐데 그러면 어린 동생은 온전히 기자의 친구가 보살펴야 할 처지였다. 남편은 진짜 동생이 맞냐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영화 <내가 날 부를 때>의 주인공 란(장자풍 분)의 상황이 기자의 친구와 닮았다. 어느 날,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20살 어린 남동생 쯔형(김요원 분)을 남겼다.
어릴 적부터 부모와 따로 살아 몇 번 본 적도 없는 이 어린아이를 혼자 돌봐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간호사로 일하며 베이징으로 대학원 진학을 하는 게 꿈인 란은 어차피 자기가 제대로 돌 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 쯔형을 위해서도 입양을 보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란의 아빠에게 모든 걸 양보하며 희생하는 삶을 살아온 큰고모는 란에게 네가 누나인데, 네 인생 포기하고 동생을 돌봐야 한다고 강요한다.
철없는 외삼촌은 자기가 데려다 키워주겠다며 쯔형을 데려가 같이 노름판을 전전한다.
처음에 부모가 죽었다는 것의 의미도 몰라 장례식장에서 뛰어놀고, 엄마와 누나는 다르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엄마한테 하듯이 누나에게 멋대로 굴던 쯔형은 이제 자신에겐 누나가 세상 전부라는 걸 깨닫고 변해간다.
하지만, 누나가 ‘여자’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강요로 의대 대신 간호학과에 가서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 했다는 얘기와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누나의 꿈을 듣고 자기가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해 스스로 입양에 동의한다.
영화 <내가 날 부를 때>는 ‘누나’라는 이유로 희생하며 살아온 이 땅의 모든 여성에게 바치는 영화다.
누나여서 대학에 붙고도 동생부터 대학에 보내느라 진학을 포기했고, 누나여서 동생이 첫 아이를 낳자 돌보기 위해 외국에서 급히 돌아와야 했다.
이런 ‘누나의 희생’은 대가 바뀌어도 이어진다.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를 대신해 누나가 꿈을 포기하고 동생을 당연히 돌보아야 한다고 강요한다.
재작년 개봉한 우리 영화 <82년생 김지영>과 꼭 닮은 영화다.
물론, 부모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자기만 챙기고 어린 동생은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꿈도 포기한 채 동생을 당연히 돌보아야 한다고 할 수도 없다.
누나로선 동생의 보호자가 되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동생 처지에서는 자신의 생사를 거머쥔 유일한 보호자가 누나뿐이니 의지할 수 있는 이도 누나밖에 없다.
어느 한쪽 편을 들기 참 어려운 문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없는 누나도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영화 <내가 날 부를 때>는 오는 9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