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복지인가!
가난한 이민자인 벨라는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청각장애인인 딸의 몸에 멍이든 것이 오해를 사 영국 정부 복지국에서 강제로 아이들과 분리한다.
아동 폭행을 의심하는 상황에 남편도 실직해 형편은 더 나빠지고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특히 청각장애인인 딸은 복지국에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소외된 상황에서 부모가 때리지 않았다는 의견을 낼 수 없다.
부모와의 접견에서 일체의 손동작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은 의사소통을 하지못한다.
생각보다 빨리 아이들은 강제 입양 절차가 진행되고, 벨라의 가족은 뿔뿔히 흩어질 상황에 놓인다.
영화 <리슨>은 제목 그대로 듣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을 위한다는 복지국에서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방법인 수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인권 침해적인 행동을 규칙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한다.
현실적 문제로 통역사를 고용하지 못한 복지국은 아이의 의사를 대변할 유일한 창구인 부모의 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손을 통한 다른 의미, 협박이나 위협과 같은 의미를 전달할 수도 있겠지만 청각장애인이란 특수 상황에서 부모의 손 사용을 금지하려면 다른 의사소통 방법을 제공한 후 금지 해야하는 것이 일반 상식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모든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 더 충격이다. 인권을 위해 일한다는 곳에서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일들이 당연한 듯 일어나고 있다.
아이의 등에 난 멍자국을 보고, 학대라고 규정하고 정당한 조사도 진행하지 않는다.
부모가 스스로를 변호할 시간도 주지 않고 충분한 조사의 시간도 갖지 않는다.
멍이 생긴 것이 학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숨기고 강제 입양을 진행한다.
빨리 이 일을 해결해야겠다는 목표 의식을 가진 직장인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을 행동들을 보며 인권을 수호하는 자들의 자질 검토가 먼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 복지 강국인 영국의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보여주며, 무엇을 위한 복지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영국에 온 이민자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월급을 받지 못해도 도움받을 곳이 없으며, 복지국에서는 주기적으로 그들을 방문해 살피지만 그들의 어려움은 나아지지 않았다.
필요한 도움은 주지 못하면서 학대라고 규정하고 아이들을 분리, 강제 입양까지 걸린 시간은 너무나 짧다.
이러한 악조건에서 아이들의 구하기 위한 부모들의 치열한 사투는 긴 여운을 남기며, 소외되고 있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청각장애인 딸은 청각장애인이라 입양되지 못해 부모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쓴웃음을 짓게 한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복지인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 <리슨>은 오는 9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