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잃은 부부에게 찾아온 선물
올해 칸영화제 공식 초청작인 영화 <램>이 21일 기자시사회를 개최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라디오에서 성가(聖歌)가 흘러 나오는 가운데, 양 한 마리가 우리에서 쓰러진다.
다음 날, 양 주인인 마리아(누미 라파스 분)와 잉그바르(힐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 분)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 오후가 돼서야 지난 밤에 쓰러진 양의 출산을 돕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부부에겐 평범한 일상 중 하나처럼 보인다.
두 사람은 새로 태어난 새끼 양에 번호표를 붙이기도 하고, 트랙터에서 잡음이 심하게 들리니 파종 전에 손 보자는 말도 하는 등 그냥 그렇게 여느 농업인과 다름없는 삶을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양몰이 개가 짖어서 양 우리로 간 두 사람은 새끼 양 한 마리를 보고 살짝 놀란다.
마리아는 그 새끼 양을 마치 아기처럼 안고 집 안으로 데려와 요람에 눕힌 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그녀는 새끼 양을 바라보며 그윽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두 팔로 안고 흔들며 허밍을 하며 양을 재우기도 한다.
부인의 이런 모습을 본 잉그바르는 눈물을 흘린다.
그러던 어느 날, 어미 양은 우리에서 나와 새끼 양이 있는 부부의 집 앞에서 계속 울어댄다.
다음 날 아침, 아내가 외출하자 남편이 새끼 양을 안고서 “나는 애 잠들면 나갈게”라고 말한다.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새끼 양을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남자가 새끼 양 ‘아다’를 소파에서 재운 후 잠시 창고에서 일하고 온 사이에 아다가 없어졌다는 것.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부부는 놀라서 “아다”를 목 놓아 부르며 온 마을을 찾아 헤맨다. 겨우 새끼 양을 찾은 부부는 품에 꼭 품고 집으로 돌아온다.
부부가 이토록 ‘아다’에 집착하는 이유는 얼굴은 영락없는 양이지만, 한 손과 몸은 사람과 똑같기에 아다를 자기들의 아이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매일 집 앞에 와서 새끼 양을 찾으며 울어대는 어미 양이 못마땅한 마리아는 어느 비가 내리던 날 남편 몰래 밖으로 나가 총으로 어미 양을 쏴 죽인다.
다음 날 아침, 부부의 집에 잉그바르의 형 피에튀르(비욘 흘리뉘르 하랄드손 분)가 찾아온다. 그는 아다를 보고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한다.
그는 “이게 대체 뭐냐?”고 묻지만, 잉그바르는 “행복”이라고 짧게 답한다.
형이 아다를 짐승 취급하며 풀을 먹이자 잉그바르는 화를 낸다. 이에 피에튀르는 동생 부부가 자는 사이에 아다를 초원으로 데려가 총을 겨눈다. 하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진 못한다.
어른들이 재미있게 놀던 어느 날, 아다는 홀로 거울을 통해 자기 모습을 본다. 그리고 자기 얼굴이 엄마, 아빠와 같지 않고 안방에 걸린 양 떼 사진 속 모습과 같음을 깨닫는다.
보통 자식이 부모보다 더 오래 살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평생 가슴에 자식을 묻고 살아간다.
영화에서 마리아와 잉그바르는 일찍이 자식을 잃었다. 슬픔에 잠겨 있던 부부 앞에 어느 날, 성탄 선물처럼 새로운 ‘아이’가 찾아온다. 비록 얼굴은 양이지만, 부부는 이건 하늘이 준 선물이다 싶어 그에게 죽은 자식의 이름을 붙였다.
부부는 지극 정성으로 ‘아다’를 키운다. 짐승이 아닌 사람이기에 야외에서 풀이나 뜯어 먹이는 ‘비인간적인’ 행위는 하지 않는다.
양도 아닌 것이 사람도 아닌 요상하게 생긴 외모의 남자의 형은 “이게 뭐냐?”며 부부 몰래 죽여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몇 해 전 아이를 잃고 슬픔에 빠진 부부에겐 ‘아다’는 새 출발을 하게 해 준 ‘선물’ 같은 존재다.
<램>은 발디마르 요한손 감독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슬란드 출신인 그는 유년 시절 듣고 자란 아이슬란드 민담과 조부모의 양 떼 목장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통해 <램>의 초석을 다졌다.
발디마르 요한손 감독은 “민담은 인간이 접하는 자연과 그 자연 속에서의 인간을 보여준다”며 늘 민담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감독은 특정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아이슬란드의 다양한 민담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 안에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인 양을 접목해 스토리를 구성해 갔다. 그 결과 눈 폭풍이 휘몰아치던 크리스마스 날 밤 이후 양 목장에서 태어난 신비한 아이를 선물 받은 마리아 부부에게 닥친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램>의 독창적인 스토리가 완성됐다.
특히 어미 양과 피에튀르로부터 아다를 지키기 위해 강인한 모습을 보이는 극 중 마리아의 모습은 양 목장을 운영하던 감독의 할머니의 모습에서 따 왔다고 한다.
비록 외모는 흉측스럽지만, 자식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아다’에게 애정을 쏟는 모습을 통해 상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 <램>은 오는 29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