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민낯 까발린 작품
197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원 세컨드>가 19일 기자시사회를 개최했다.
한 남성(장역 분)이 배고픔도 잊은 채 한참 동안 사막을 지나 한 마을에 도착한다. 막 영화 상영이 끝났다는 말에 내일은 어디서 영화를 볼 수 있는지 묻는다.
영화를 엄청 좋아해서가 아니라, 상영 전 틀어주는 ‘중화뉴스’(과거 우리나라의 ‘대한늬우스’와 같은 국정홍보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국정홍보 영화를 보기 위해 이렇게 힘들게 먼 길을 온 이유는 자기 딸이 ‘중화뉴스’ 제22호에 아주 잠깐 나온다는 편지를 받고, 영화를 통해서라도 딸을 보기 위해서다.
무슨 딸 얼굴을 보러 이리도 고생하나 싶지만, 사실 그는 딸이 8살 때 직장에서 싸워서 ‘노동교화소’에 끌려갔다. 부인과는 이혼했고, 어느덧 14살이 된 딸을 여태껏 본 적이 없어 아주 잠깐이지만 이렇게라도 딸 얼굴 좀 보려고 몰래 교화소에서 탈옥해 끝없는 사막을 건너서 마을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런 그의 사정도 모르고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불분명한 아이(후에 여자로 밝혀진다)가 필름을 영화 필름을 훔쳐서 달아난다.
아니 영화를 틀어야 중화뉴스도 틀텐데, 영화 필름을 들고 튀면 중화뉴스 상영을 안 해 딸 얼굴을 볼 수 없지 않나 싶어 그는 아이(류호존 분)를 뒤쫓는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아이에게 필름을 빼앗긴 채 다시 마을로 돌아온 그는 식당에서 다시 그 소녀를 만난다.
그는 얼른 식당에 있는 영사 기사(영화에선 상영원으로 표기한다)에게 여기 오늘 상영할 필름이 있다고 소리친다.
상영원(범위 분)은 필름 배달원인 양하(이연 분)는 어디가고 당신이 필름을 가지고 있냐고 따져 묻는다.
남자와 아이에게 살짝 위기가 찾아오지만, 영화 상영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주민들을 생각해 그는 필름을 가지고 강당으로 간다.
그런데 이게 웬걸! 양하의 오토바이가 고장 나서 자기 아들이 대신 리어카에 필름을 싣고 왔는데, 필름을 길에 질질 끌고 와서 필름이 죄다 손상됐다.
도저히 상영할 상황은 아니지만, 주민들의 유일한 낙이기도 하도 남자가 중화뉴스에 자기 딸이 나와서 꼭 봐야 한다고 간청해 마지못해 상영원은 주민들과 함께 필름을 세척 해 복구한다.
그렇게 겨우 혁명영화와 중화뉴스를 상영하게 된다.
하지만, 남자가 노동교화소에서 탈옥한 사실을 알게 된 상영원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보안원에게 신고해 남자는 결국 붙잡힌다.
영화 <원 세컨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총연출을 맡은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이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2019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황금곰상 부문에 초청됐으나 중국 정부가 문화대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는 이유로 출품을 막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도 그렇고, 워낙에 다양한 채널과 OTT의 발달로 온 마을 사람들이 극장에 모여 같은 영화를 본다는 게 낯설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특히 사람들은 정부에서 만든 선전 선동 영화를 보며 주제가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 1980년대 우리나라 역시 3S(Screen, Sports, Sex) 정책을 시행한 적이 있는데, 영화라는 도구가 얼마나 쉽게 사람들의 사고를 바꿔 놓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하나, 극 중 주인공은 자신의 일터에서 다른 동료와 싸웠는데 하필 조장과 친한 사람과 싸우는 바람에 일이 커져서 노동교화소에 끌려가게 됐다. 중간에 탈옥했다가 다시 끌려가 2년을 더 살고 풀려났으니 총 8년을 갇혀있은 셈이다.
싸운 게 잘했다는 게 아니라, 단지 조장(관리자이니 친정부 성향)과 가까운 이와 싸웠다는 이유로 우리의 교도소에 해당하는 노동교화소에 가둔 것은 인권침해의 요소가 강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중국 정부에서 이 작품이 중국 내는 물론 해외에서 상영되지 못하도록 막은 것으로 보인다.
극 중 소녀는 부모 없이 동생(장소발 분)과 단둘이 산다. 부모가 제대로 없어 출생신고 때 공무원이 대충 지어준 이름이 소녀는 류가녀(류씨 딸이라는 의미)와 동생은 류동생(류가녀의 동생이라는 의미)이다.
제대로 된 이름도 없는 어린 남매는 어렵게 생활을 이어간다. 류가녀는 책을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눈이 나빠질까 봐 필름으로 만든 전등갓을 빌려 왔는데, 동생이 실수로 전등갓을 태워 먹어 빌려준 아이에게 매일 같이 두들겨 맞는다.
그런 이유로 류가녀는 필름이 필요해 훔친 것이다.
만약 류가녀와 류동생에게 부모가 있었더라면, 아니면 정부에서 경제적 지원을 해줬더라면 전등갓 하나쯤은 남에게 빌리지 않고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매일 얻어맞지도 않았을 테고, 필름을 훔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이게 다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사회와 국가의 탓이리라.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원 세컨드>는 설 연휴 직전인 이달 27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