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최선의 선택?
‘한 남자’ 김모인(강길우 분)은 알콜성 치매로 기억을 잃어간다. 매일 일기를 적으며 자살을 계획하고, 술을 마시고 밧줄을 산다. 죽음을 위해 밧줄을 사지만 밧줄이 있는 장소마저 잊어버린다.
그는 치매로 뜻하지 않게 거짓말을 하게 되지만 그 또한 기억에 없다.
‘한 여자’ 류화림(박가영 분)은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무력감에 매일 술을 마시고 더 우울해진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고, 마침내 함께 죽기 위해 태백으로 떠난다.
함께 생을 마감하기 위해 떠나는 두 사람의 인생을 그린 영화 <온 세상이 하얗다>는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그들의 여정 속에 녹였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두 주인공의 과거, 현재는 우울하다 못해 암울하다. 현재를 살아가느니 차라리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선택인 것 마냥 힘겨워한다.
자살을 하기 위해 준비한 밧줄까지 기억해내지 못하는 김모인은 우연히 알게 된 류화림이 매일 다른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해도 그대로 믿는다. 기억에 없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치매라는 병이 주는 기억력의 소실을 잘 드러내는 장면으로 삶에 얼마나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류화림도 잘생긴 전 남자친구가 집으로 찾아오고, 그 남자로 인해 무섭고 아찔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 남자는 스토커로 화림은 자기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상황까지 몰린다.
현대 사회는 외모에 지나치게 치중해 있다. 화림의 인생에 악영향을 끼친 존재지만 자칫 잘생긴 외모로 인해 스토커에게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잘생긴 사람에게 더 호감을 갖는 사회가 바로 우리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부분에 있어 경각심을 가지고 외모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지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차 안 라디오에서는 통일의 소식이 들리지만, 두 사람의 반응은 정반대다. 통일이 됐다고 기뻐하는 김모인과는 달리 류화림은 이제 죽을 것인데 무슨 소용이냐는 시큰둥한 태도를 보인다.
반대로, 휴게소에서 만난 이상한 두 남자에게 돈을 뺏어가려는 도둑으로 생각해 심한 말을 큰소리로 외친다.
현대인들은 삶에 지치고 생활에 치여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에 반응하고 분노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에는 관심이 없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럴 여력이 없는 것이다. 또한, 탈출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작은 희망도 없는 삶은 자살이라는 결심을 하게 만든다.
영화는 아이러니하게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더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그들을 보면서 무력한 인생을 사는 현대인에게 다른 방법으로 삶의 소중함을 전달한다.
그들이 죽기 위해 떠난 여정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가슴을 적시며, 현대인의 지친 삶을 그대로 투영해 그들을 통해 다시 자신을 확인하게 한다.
결국 두 사람은 마지막 장소인 까마귀 숲에 도착한다. 하지만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뒤덮고 태고의 순수를 선물한다. 그들이 진정 죽음에 성공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새하얀 눈과 함께 희망을 품고 새 삶을 살길 빌어본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자살 여정을 그린 영화 <온 세상이 하얗다>는 오는 10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