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SF영화
여기 한 나라가 있다. 아이가 4살이 되면 국립학교에 들어가 먹고, 자면서 교육받는다. 그리고 졸업 후엔 공무원(군인)이 되어 국가의 녹을 먹으며 안정적으로 살아간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시민권’이 부여돼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한다.
여기까지 듣고 여러분은 이런 나라가 있다면 살고 싶은가? 과연 이 나라를 ‘유토피아’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자 다시 한번 내용을 정리해 보겠다. 아이가 4살이 되면 ‘강제로’ 국립학교에 입학해야 하고, 그곳에서 아이는 군사훈련과 국가에 대한 맹세를 강요당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학교가 들어간 순간부터 부모에게 시민권이 나오지만, 평생 아이와 만날 수도 없다.
그리고 ‘국가의 자산’으로 길러진 아이는 결국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쓰인다.
다시 한번 묻겠다. 여전히 이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라고 답하겠는가?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는 2043년, 새로운 전쟁을 일으켜 대제국을 건설하려는 ‘에머슨’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나라에선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가 4살이 되면 강제로 연방아카데미에 입교(入校)해야 한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나 사상 따위는 포기한 채 국가를 위해 헌신하도록 세뇌당한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군인이 되어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부모와 인연도 끊고 살아야 한다.
단지 인연을 끊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아이들은 이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세뇌돼 부모를 증오하며 살아간다.
이런 지옥 같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나스카(엘레 마이아 테일페데스 분)는 자신의 딸 와시즈(브룩클린 르덱시에 하트 분)가 10살이 될 때까지 숲에 숨어 살며 딸이 강제로 입교하지 않도록 딸을 보살폈다.
하지만, 드론을 동원해 ‘국가 자산’을 찾아다니는 정부의 감시망을 피하지 못해 결국 와시즈와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에 나스카는 딸을 되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우연히 한 부족과 만난다.
그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똘똘 뭉쳐 생활한다.
나스카의 사연을 들은 마을의 한 할머니는 나스카가 예언서에 기록된 자신들의 ‘수호자’라며, 자신들이 아카데미에서 탈출시킨 아이들을 예언서에 기록된 ‘빅스톤’으로 데려가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처음엔 거절하던 그녀는, 와시즈를 아카데미에서 빼내 오겠다는 약속에 그러겠노라고 답한다.
잠시 자기 집에 들린 나스카는 마을 주민들이 모두 죽거나 아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국가에서 빈민가를 ‘청소’하기 위해 그들에게 바이러스가 묻은 식량을 드론을 통해 배급했기 때문.
마치 구약성서에 나오는 하늘에서 내리던 식량 ‘만나’처럼, 드론에서 떨어지는 식량을 좋아하며 주워 먹은 이들은 결국 병에 걸려 하늘나라로 가고 만다.
국민을 필요한 존재인지로 구분해 국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면 차라리 이 사회에서 없어지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해 어떻게든 그들을 ‘청소’하려 한다.
이처럼 영화는 토착민의 삶을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다니스 고렛 감독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차별이 심해지는 걸 보면서 어떻게 토착민에 대한 삶을 스크린 위에 녹여낼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1979년 발매된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벽)이라는 노래를 듣고 꼭 토착민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릴 필요는 없겠다 싶어 이 같은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대신 자기 목소리를 내기 두려워하는 이들이 조금 더 편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SF라는 장르를 선택했다고 한다.
비록 가까운 미래, 그리고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2022년 대한민국의 현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는 내달 3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